영적 치유를 향하여

[ 특집 ] 제108회 총회주제 해설 1.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출15:26, 사53:4-5, 살전5:23)

곽재욱 목사
2023년 09월 01일(금) 13:14
제108회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올해의 총회주제를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로 정했다. 제108회기의 주제는 지난 제104회기부터 제107회기까지 4년 범주 주제를 마치고 새롭게 시작되는 4년 범주 주제인 '하나님의 나라'의 첫 해의 주제이다.

이 주제는 오늘 목회의 현장이자 대상인 교회와 사회가 질병이환(疾病罹患) 상태라는 진단을 근거로 한다. 오늘 한국교회와 한국사회 공동체는 영·혼·육의 심각한 손상과 감염으로 인해 더 이상 치유를 지체할 수 없는 응급상황에 놓여있다. 또한 이 주제는 교회와 목회자가 치유의 주체이기 이전에 받아야 할 객체요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치유의 완전하고 근원적 주체이심의 신앙고백이다. 모든 현대 의약과 의술도 하나님께서 이미 제정하신 치유의 원리와 병자들에게 내려주시는 회복 의지와 능력을 근거로 한 것일 뿐이다.

이 주제를 제시한 총회의 우선적 과제는 교단 소속 교회들에게 개혁신학의 전통에 근거한 건강하고 균형 잡힌 치유신학을 제시하는 일이다. 총회는 이 주제를 통하여 치유에 대한 우리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점검하고, 성경말씀과 교단의 개혁신학 정체성에 입각한 치유신학을 제시함으로써 목회자들이 치유자로서 자아의식을 확립하고 치유목회 사역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이 주제는 교회와 목회자가 영적 치유자임을 선포한다. '여호와 라파', 치유의 하나님께서는 세상 가운데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영적 치유자로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치유와 회복의 원리에 따라 의사가 몸을 치료하고 상담 치료자가 마음을 고치듯이 교회는 '영·혼·육'을 함께 치유한다. 교회와 목회자의 치유는 영·혼·육의 모든 차원들과 인간 삶의 전 분야를 대상으로 삼는다. 교회의 영적 치유의 영역은 내적 영역과 외적 영역 두 범위로 나누어진다. 내적 영역에서, 목회자의 치유는 우선 교회의 회중들을 향한다. 그러나 목회자와 교회의 치유는 교회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 인간 삶의 전 분야들로 확대된다.

오늘날 개혁교회의 목회에서 치유신학과 실천에 혼란이 야기된 두 가지 신학적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편협성에 기인한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론이 헬라문화 속에서 정착하면서 교리 중심적인 구원론에 우선적 관심으로 치중하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는 "신앙고백서"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론 가운데 치유의 의미와 중요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그리스도 중심 구원론을 통전적으로 이해하고 '영·혼·육'의 치유에 이르는 풍성한 해석이 적용되었더라면 교회의 치유 사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적극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개혁교회의 목회에서 치유 실천이 약화된 원인은 치유를 목회 실천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은 20세기 미국의 오순절 교회의 존재와 그 영향에 대한 비판과 부정으로 개혁교회가 자신을 그 일방적 대척점에 세운 것에 기인한다. 20세기 오순절 교회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지역들에서 치유신학과 그 실천을 통하여 급성장 하는 동안, '고 교회(high-church)' 전통에 익숙한 개혁교회는 오순절 신앙을 낯설고 부적절한 것으로만 대하여왔다. 치유신학은 건강, 물질적 보상, 성공 일변도의 현세적 기복신앙으로 기독교의 본질인 십자가의 희생을 도외시하고 세상 성공에 치우치는 저급하고 안이한 종교 행태라는 비판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속하는 현대 의학과 상담 치유와 비교해 볼 때, 오순절의 치유행위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마이너리그의 신앙이라는 인식이 그러한 비판에 연료를 제공하였다. 지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국의 개혁교회를 중심으로 한 오순절-신비주의 치유를 지양하고 찾았던 대안은 심리-상담 치유였다. 20세기 말의 30년 기에서 21세기 새로운 10년에 이르는 동안 심리-상담 치유는 개혁교회들의 오순절-신비주의 치유에 대한 확고한 대안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동안 '치유'는 곧 '치유 상담'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략 2010년 기에 이르러 트로피의 주인공은 상업성을 앞세운 티브이 매체들에게로 돌아간 듯하다. 교회의 치유 목회는 세상에서 교회로,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점점 더 그 운신의 폭이 좁아져 교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목회 프로그램들 중의 한 부분으로 게토화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주제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총회의 또 하나의 목표는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개혁전통에 근거한 치유된 인간상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행정이나 프로그램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목회의 본연인 치유와 회복으로의 목회로 패러다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돕는 일이다. 우리는 그 동안 한국 개혁교회들이 개혁신앙의 전통을 지나치게 문자적이고 율법적으로 수용하여 목회자들이 치유 목회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떼게 한 원인이 되었음을 주목하였다. 그동안 한국 개혁교회는 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 가운데 명확하게 나타나는 치유를 목회의 본령으로 삼지 못한 채, 한편으로 의술과 의학의 전문영역에 넘겨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단들 가운데 오순절 교단의 치유 신앙의 전유물로 넘겨주어 버렸다는 반성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기의 첫 10년 기까지 치유목회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상담치유분야까지 세상의 전문성과 대중 상업성에 밀려 그 영향력이 갈수록 축소되어 목회의 역동성 자체가 약화되기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 한국교회는 교회의 치유가 세상의 의술이나 심리 상담 같은 것들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교회의 고유의 치유 영역의 존재와 교회가 그 치유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력하게 선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치유는 근본적으로 영의 치유이다. 육이 혼을 포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과 육은 영을 포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육'을 고친다고 해서 '혼'이 고쳐지는 것이 아니며, '육'과 '혼'을 고친다고 해서 '영'을 고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은 혼과 육의 사령탑이며 혼과 육을 포괄한다. 혼을 고치면 육이 고쳐지는 것처럼, 영을 고치면 혼과 몸이 함께 고침을 받는다. 이 '영의 고침'은 '교회와 목회'에 속한 것이다. 교회와 목회자의 치유는 세상의 그 어떤 치유들보다 치유의 궁극적 의미와 본질적 가치, 그리고 초월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의 영의 치유는 완전하신 치유자, 궁극적 치유자이신 '여호와 라파' 되신 우리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그리고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가장 확실하게 반영하는 치유이기 때문이다.

곽재욱 목사 / 동막교회, 총회 주제연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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