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에서 기억 조각

[ 미션이상무! ]

이구 목사
2023년 08월 30일(수) 15:46
2011년 해병대연평교회 주일예배 모습.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해군해병대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필자는 2011년 7월 12일에 연평부대의 군종목사로 부임을 받았다. 그전까지 연평도 포격전 속에서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고, 추위 속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군종활동을 했던 전임 목사님의 뒤를 이어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해병대연평교회에서 첫 주일예배를 앞두고 폭우로 교회에 무릎까지 물이 찼던 급박한 상황 속에서 부대 지원을 받아 물을 빼내고 밤새워 청소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일에 교회를 가야 하는데 물이 끊겨 생수로 머리를 감았던 기억, 하루에 한 번씩 포격상황을 대비하여 긴급문자가 발송되고, 모든 부대원들이 하던 업무를 멈추고 무장을 하고 지휘통제실로 부리나케 올라갔던 기억도 머릿속에 깊이 남겨져 있다.

군가족이었던 나의 아내는 연평도에서 포격훈련이 있을 때마다 방공호로 대피하였는데 포를 쏘는 커다란 소리에 많이 놀라서인지 이후부터 커다란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불편한 심인성 질환을 가지게 되었다.

연평도에서 근무하며 군종목사로 하여금 고민이 되었던 지점은 '용서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일례로 해병대연평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해병대, 해군 아들들에게 기도인도를 시키면 이런 부류의 기도를 아들들이 올려드렸다. "하나님. 한 번만 더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가 즉시 반응하며 열 배, 백 배의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군인의 입장에서는 전투의지가 고양되어 있는 기도일지 모르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복수심이 가득한 기도였다. 저들에게 '전우애'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북한을 향한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군종목사로서 부담이 되는 주제였다.

결국 필자는 연평부대에서 근무하는 1년여 의 시간 동안 북한에 대한 '용서와 사랑'에 대해 장병들과 군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분노를 안고 전역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군종목사로서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도 여전히 연평도는 포격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섬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병대와 해군은 철저한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지키고 있다. 그리고 해병대와 해군은 매년 11월 23일이 되면, 연평도 포격전을 기억하며 전투의지를 새롭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연평도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의 위협도 버티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연평도에서 근무했던 2011년에도 중국의 어선들이 섬처럼 모여 우리의 바다를 점령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시스템 하에서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연평도와 같이 외진 곳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희생과 헌신을 발휘하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군과 해군해병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길 소망해 본다.

이구 목사 / 해군중앙교회·해군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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