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 나의 동역자

[ 목양칼럼 ]

황호민 목사
2023년 08월 09일(수) 10:25
아내와 나는 지난 5월 15~16일 아시아나눔선교회(회장:박원길)의 초정으로 태국 치망마이에서 열린 '선교적 교회 목회자 세미나'에 공동강사로 다녀왔다. 태국어로 제작된 포스터와 현수막에 강사로 소개된 우리 부부의 사진과 이름이 낯설고 신기했다. 태국 현지 목회자들과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 50여 명이 참석했고, 우리는 마을목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지난 20년 간의 이야기였다. 참석자들의 뜨거운 열정 속에 1박 2일의 세미나를 마쳤다. 그러나 누구보다 감격하며 은혜를 받은 사람은 우리 부부였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지난 목회 이야기를 다시 나누며 행복했다.

신대원을 졸업할 즈음에 사역지를 위해 작정하고 기도원에 올라갔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렇게 1999년 1월에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토평교회에 전임 전도사로 부임했다. 그때 아내는 제주라는 곳이 주는 낯설음과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며 따라왔다. 필자는 목회를 배우며 즐겁게 부교역자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그때 아내는 6개월 된 아기를 키우며 제주살이를 했다. 아내의 제주살이는 외로운 시간이었다. 2002년 5월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어느 날, 아침에 늘 기도하시는 권사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기도가 주님의 부르심이 됐고, 같은 날 지금 섬기는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았다.

당시 필자의 나이는 34세, 담임목사로 섬기기엔 이른 나이였다. 담임목회에 대한 준비가 매우 부족했고, 주변 사람들도 말렸다. 누구보다 아내는 여러 가지 타당한 이유로 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르심에 순종해 부임했고 지금 21년째 목회하고 있다.

처음 부임했을 때 필자는 목회 철학이나 방향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일 주어진 일에 성실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교회 안에서 역할을 찾기 어려웠고 해야 할 사역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내의 눈에 주변 공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들어 왔고, 아내는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숙제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후 지역아동센터가 세워지고, 청소년돌봄센터도 운영하게 됐다. 초창기에는 교회 안에 센터가 있었기에 갈등도 있었고 주민들의 경계하는 눈초리도 있었다. 아내는 마을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마음에 품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하나씩 돌다리를 건너듯 마을과 더불어 살아갔다. 우리 자녀들도 그 안에서 함께 자라났다. 구좌어린이합창단이 창단돼 마을에서 아이들이 노래하고, 구좌청소년오케스트라가 만들어져 청소년들이 연주하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정기연주회 날은 마을 사람들의 잔치가 됐다.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와 마을 어른들도 좋아했다. 어린이기자단을 만들어 마을을 홍보했고, 마을 노래를 만들고, 마을을 화폭에 그리면서 우리마을의 아름다움을 공유했다. 마을의 농산물인 당근을 소재로 삼아 그림책을 만들면서 우리 마을에 대한 자긍심도 갖게 됐다. 아이들은 '당근이지'라는 책의 작가가 됐다(이 책은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즐거운 책으로 선정돼 화제가 됐다). 유소년축구단을 통해 아이들은 꿈을 가지고 건강하게 동네에서 자라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오고 센터와 교회를 탐방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아내는 마을과 소통하며 마을목회의 탁월한 사역자로 센터와 지역를 섬기고 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심방하는 일과 성경 읽기, 중보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목회 동역자로 섬기고 있다.

우리는 교회와 마을을 섬기면서 정신없이 달렸고, 어느덧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다. 우리는 선교지에서 돌아오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했다. '아내와 함께'라서 행복한 목회였다.

황호민 목사 / 구좌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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