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자리에서 더욱 빛나는 생명

[ 미션이상무! ]

장윤진 목사
2023년 06월 28일(수) 17:17
군대 안에서 현역 장교로 복무하면서 사역하는 성직자를 '군종장교'라 부른다. '군종'이라는 말은, 군대 종교업무를 담당하는 특기, 부서, 직역, 병과를 의미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군은 합법적으로 부여된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군의 특성에 비춰, 군대 안에 종교가 존재하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군대의 존재 이유와 종교가 추구하는 이상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군종제도는 왜 존재하는가? 왜 군대 안에 성직자가 '군종장교'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필자의 경험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10여 년 전 공군 00부대에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아침 부대 주요 참모 한 분이 사무실에서 쓰러져 외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는 전갈을 받았다. 우리 기지교회 J안수집사였다.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들어서는 순간,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사인은 급성심장마비. 우리 부대(사령부급 부대)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주요 보직의 참모였고, 교회적으로는 장병선교 부서의 책임자요, 성가대 지휘자였으며, 부부가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여전도회장의 남편이었다. 무엇보다 그날은 우리 부대가 1년에 한 번 개최하는 중요하고 큰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부대가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 장례절차가 문제였다. 큰 행사가 있는 날, 부대에 빈소를 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례를 진행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매우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때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지휘관이 결단했다. 부대 다른 시설에선 장례를 진행하기 어려우니, 부대 내 기지교회에서 장례를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기지교회 교육관에 2시간 만에 빈소가 설치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참모총장님이 첫 번째 조문객이 되었다. 사흘째 되는 날 부대 강당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 필자는 '기독교 종교행사'(장례예식)를 맡아 약 15분간 설교할 기회를 얻었다. 2400여 명 전 부대원이 강당에 모였다. 이때 필자는 '원색적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다.

그 엄숙한 죽음의 순간, 자신이 어떤 종교를 가졌느냐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결식에 참석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군종목사'의 설교를 들어야 했다. '종교편향' '종교강요' 같은 단어는 발붙일 수 없는, 매우 엄숙한 시간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임무를 수행하다가 우리 곁을 떠난 '부대원'을 애도하는 수많은 '전우'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군종이 왜 존재하는가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순간이었다.

군대에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죽음'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자주, 많이, 크게 나타나는 사건이 '죽음' 사건이다. 그러나, 군 안에 있는 어떤 특기, 직역, 병과도, 죽음을 다룰 수 없다. 오직 종교만이 '죽음'을 '해석'한다. 군종은 바로 이 '죽음사건'을 다루고 해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오직 우리 기독교 신앙만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죽음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해답을 제시한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가 죽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만이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연결하는 유일한 소망임을 선포한다. 군종목사는 바로 이 복음, 죽음을 이기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군대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소중함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죽음을 막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목숨을 바치는 군대에서,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능력을 선포하는 군종목사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복되다.

장윤진 목사 / 공군오산기지교회·공군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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