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 내 반지

[ 독자수필 ]

서명자 장로
2023년 06월 06일(화) 08:38

서명자 장로

눈 뜨고 일어나면 나의 하루 일과는 손에 물을 묻히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아침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고, 투덜투덜 거리며 어제 다 못한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내 손이 내 딸'이라고 밥맛은 또 왜 이리 좋은지…. 그러니 살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냠냠냠 쩝쩝쩝' 힘을 올리고 나면, 집 청소에 돌입을 하게 된다. 문제는 돌아서기가 무섭게 점심때가 다가오고야 만다는 것이다. 점심 설거지는 뒤로 하고 나의 일터인 학원으로 달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들을 맞이하며 사랑을 나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그래, ○○야, 사랑합니다."

참고로 우리 학원의 인사말은 '○○○, 사랑합니다'이다.

학원에 선생님들이 몇 분 계시지만 언제나 궂은일은 전부 내 몫이다. 또 미술을 가르치다 보니 내 손은 하루에 수십 번 정도는 목욕을 하는데, 때론 손가락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렇게 나의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흘러 어느새 저녁이 되고,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식사를 위해 재빠른 손놀림을 해야만 한다. 그러니 반지 낄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이 나의 삶이 되어 버렸다. 이것도 모자라 시간만 나면 우리의 놀이터인 농장으로 달려가 틈새 공략을 시도한다.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유일한 방법인 잡초를 뽑는 것이다. '아이고 이 녀석, 넌 죽었다 맛 좀 봐라' 물론 야채들은 뽑아서 교회 식구들이랑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 드린다. 그뿐인가 교회 반주를 맡고 있다 보니 틈틈이 피아노 연습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반지가 거추장스러워 끼웠다 뺐다 하다 보니 이제는 아예 귀찮아서 장롱 속에 묻어만 두고 있다.

주인을 잘못 만난 내 반지가 때론 짠하고 불쌍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 그 반지가 제자리를 찾아 환하게 웃을 날이 오겠지….



서명자 장로/새구미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