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종소리를 울리자

[ 목양칼럼 ]

강병철 목사
2023년 05월 24일(수) 14:20
필자가 태어나 8세까지 살던 강화도의 고향 집 뒤편 언덕에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마당 한쪽의 종탑에서는 하루에 몇 차례씩 종이 울렸다. 새벽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을 시작으로, 정오의 종소리, 특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의 종소리는 노을처럼 마을을 따뜻하게 감쌌다. 마을에 급한 일이 있을 때도 예배당의 종이 울렸다. 동네 개구쟁이들과 장난삼아 종을 치기도 했다. 해가 아직 하늘에 솟아 있는 오후, 논과 밭에서 땀 흘리던 마을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있을 즈음, 개구쟁이들이 울린 종소리에 놀라 헐레벌떡 달려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물론 아버지께 호되게 야단맞은 기억도 잊지 못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예배당마다 종을 쳤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서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역사가 오래된 교회의 경우 역사 기록관이나 박물관에 녹이 슨 종을 보관하고 있다. 예배당을 신축하고 종탑을 그대로 보존하는 교회도 있다. 농촌을 지나다 종탑이 있는 교회를 보면 반갑다. 하지만 이제는 도시든 농촌이든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유럽에는 지금도 예배당에서 종소리가 울린다. 유럽의 도시를 둘러보다 종소리에 잠시 발을 멈추고 종탑을 바라본다. 특히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을 무렵의 종소리는 엄마의 품에 안긴 듯 평안함을 선물하고, 예배당에 조용히 앉아 기도하던 어릴 적 영적인 감성을 소환해 낸다. 몇 년 전 독일 베를린장벽에서 만난 한 독일인으로부터 "한국의 통일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이 '너는 조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다. '예배당을 건축하면 종을 달아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예배당을 건축한 후 정오와 저녁 6시, 하루에 두 번씩 30초간 종을 울렸다. 조용하던 마을에 종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종탑을 올려다보았다. 대체로 종소리를 듣고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는 반응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었다는 어느 분은 고향교회가 생각난다며 다시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을 전하기도 했다.

하루 두 차례씩 종을 울렸으나 염려했던 민원은 없었다. 2년쯤 지난 뒤 시끄럽게 왜 종을 치느냐는 항의 전화가 걸려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험악한 외모의 남자가 교회 행정실에 항의하고 돌아갔다는 말도 들었다. 교역자와 장로님들의 만류에도 설득해 보려고 그분을 만났다. 자신은 밤에 일하고 낮에 쉬는데 종소리 때문에 잠을 깼다는 이유였다. 그분에게 사과한 후 토요일과 주일 저녁 6시에만 종을 울렸다. 몇 개월 뒤 또 다른 사람의 항의가 있었다. 필자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종을 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3년 만에 타종을 멈췄다. 마지막으로 종을 울린 것은 3.1운동 100주년 맞아 여러 교회가 정오에 1분간 종을 울릴 때이다.

예배당의 종소리를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예배당의 종은 단순한 종소리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추억의 소리고, 분주함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사는 사람에게는 평안을 주는 소리다. 새벽 닭 울음소리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회개했던 베드로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이전의 신앙을 회복하도록 하는 소리다. 필자에게도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을 소환하는 소리다. 어쩌면 그 추억 때문에 지금 목사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가 다시 종을 울리면 좋겠다. 단지 종소리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인격이 복음의 종소리가 되어 온 세상에 울렸으면 좋겠다.

강병철 목사 /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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