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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그래도 가야할 길, 평화' 4.미·중·러 국제정세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정성철 교수
2023년 05월 16일(화) 10:51
우크라이나 전쟁의 안개가 자욱하다. 발발 1주년이 지났지만 종전의 희망은 찾기 어렵다. 수일 내로 승리하리라는 푸틴의 오판이 촉발한 침략전쟁의 끝은 언제일까? 슬프게도 전격적 합의 속에 전쟁이 마무리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냉전기 소련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푸틴이 일정한 성과 없이 군대를 거둘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가 동부 영토와 크림반도를 포기한 채 종전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현재 누구도 섣불리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을 전망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무엇인가? 미국-중국-러시아 삼각관계의 재부상이다. 러시아의 침략전쟁으로 서방이 대대적인 제재에 나서자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지휘 아래 유럽연합을 포함한 민주국가들이 대규모 경제 압박을 신속히 가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제한 없는 파트너십(partnership with no limit)'을 발전시켰다.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대만과 남중국해들 둘러싼 미중 갈등을 증폭시킬 것을 우려하는 요즘이다. 당연히 신(新)냉전이라는 용어도 자주 등장한 나머지 익숙한 용어가 돼버렸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은 미국-중국-소련 삼각관계를 역전시켰다. 중국의 공산화로 자연스럽게 이념적 동지였던 두 나라는 1950년대 후반부터 이념갈등과 영토분쟁을 겪게 되었다. 그러자 미국이 중국에 접근하면서 양국 데탕트가 성사되자 중국은 세계경제에 편입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일구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미국은 중국에 대한 관여정책을 이어가는 동시에 이른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글로벌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미국의 희망적 사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공세적 외교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앞에 자취를 감춰버렸고 세 강대국의 삼각관계는 재역전되고 말았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위협임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중국은 현존질서를 변경할 의도와 능력을 갖춘 유일한 국가이며 러시아는 뚜렷한 현재 위협임을 강조하며 이른바 자유연합의 필요를 강조하며 동맹규합에 나선 것이다. 미국-일본-호주-인도가 함께하는 안보협의체 쿼드(Quad), 미국-호주-영국의 오커스(AUKUS), 민주주의 정상회의 등이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주장한 권위주의 위협론을 강화하면서 민주연대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항한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도 명확하다. 2022년 6월 주미중국대사관은 블링컨 미(美)국무장관의 연설내용을 반박하며 '현실 체크(Reality Check)'를 내놓았다. 미국은 사실 자국의 이익을 증징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질서를 보호하고자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미국이 혼란한 세계질서의 근원이며 현재 중국을 봉쇄하고 압박할 모든 대내외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신의 대리인'으로 자각하는 미국이 지배하는 시대는 종식되었다고 연설하였다. 더불어 자신들의 우크라니아 침공을 정당화하며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자국의 위치를 강조했다.

이러한 미중러 강대국 정치는 글로벌 경제망을 재편하고 있다. 전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과 에너지 가격 상승을 경험했다. 모두가 연결된 탓이다. 서방이 제재에 맞서 러시아는 가스와 원유의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시키면서 중국산 통신장비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 기업 역시 새로운 수출과 투자 환경에 적응해야 할 커다란 숙제 앞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전세계가 한 마을이 되가는 지구화가 멈춰 버렸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둘로 쪼개질 가능성은 낮다. 최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머스크 테슬라 CEO의 중국방문이 상징하듯, 두 진영 간 무역과 투자는 이어지고 있다. 중국산 제품이 모두 사라진 미국 월마트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자의 불만을 해소할 방안이 없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각국이 신음하는 요즘이다. 따라서 핵심 물자와 첨단 산업을 둘러싼 부분적 결별을 예상할 수 있다. 어느 누구와 무엇이든 거래하는 자유무역은 끝난 것이다.

이런 재세계화(re-globalization) 시대에서 상호의존의 무기화가 화두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의존이 심하면 약점이 되고 만다. 사실 중국의 부상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기회였지만 동시에 문제였다. 중국에 대한 의존이 심해서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이 약화된 상황에서 상대의 취약성을 공격하는 행위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첨단 산업의 기초인 핵심 광물과 기후 변화로 생산이 줄어들 식량을 주목해야 한다. 상품 수출과 식량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의 고민이 커지는 대목이다.

한편, 급변하는 미중러 삼각관계는 남북관계의 겨울을 이끌고 있다. 중러의 밀착은 자연스레 북중러 협력으로 이어진 반면, 한미·미일·한미일 협력은 진전되고 있다. 냉전기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의 데자뷰이다. 2018년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으로 화해 국면이 조성된 지 불과 몇 년만에 구조적 긴장에 남북한이 빠져들고 말았다. 2022년 북한의 군사도발 횟수는 사상 유래가 없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깊은 우려를 낳으면서 핵무장론을 부추기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 목표인지에 대한 의문 속에 대안적 목표에 대한 목소리도 커진다.

당분간 동아시아에서 두 세력 간 긴장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지난 4월 26일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양국이 인도 태평양 전역에서 펼칠 협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에 대한 우려와 러시아 침공에 대한 규탄과 더불어 한미일 3국 협력의 중요성을 명시했다. 이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반응은 당연히 매섭다. 협력과 평화를 논하기엔 눈앞에 닥친 대립과 위협이 엄중하다. 핵국가 북한과 살아갈 방법은 무엇인가? 중국과의 거리두기 속 남북관계 개선은 불가능한가? 글로벌 팬데믹으로 강화된 국제정치의 원심력은 우리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새로운 냉전은 불가피하며 반영구적이라는 결정론적 사고를 깨야 한다. 세계경제의 재편과 강대국 경쟁이 몰고 올 미래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강대국 충돌을 방지할 규칙을 설정하고 이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희망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확충하는 것이 우리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이웃국가를 위협으로 낙인찍기 보다 기후변화와 팬데믹을 공동 위협으로 인식하는 동지국가(like-minded countries)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개항 이후 망국을 막지 못하고, 분단 이후 전쟁을 막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한국의 역량과 위상은 놀랍도록 성장했다. 더 이상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우리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엄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희망적 사고와 집단 사고에 갇힐 경우 우리의 눈은 가려지고 만다. 국제정치의 진영화에 앞서 우리 사회의 진영화를 타파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대국 경쟁이 영역별로 심화되고 그것이 연계되는 상황 속에 우리의 갈 길을 함께 논해야 한다. 과연 우리의 위협·이익·가치는 무엇인가? 누구를 위협과 원수로 삼는 프레이밍에 갇힌 채 누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를 세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사랑, 근신하는 마음'에 따라 지혜와 용기를 모을 때이다.



정성철 교수 / 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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