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약속이란

[ 주간논단 ]

강윤구 목사
2023년 05월 01일(월) 10:00
'집에서 늦어지면 길에서 바빠진다.'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집에서 가족들에게 늘 하던 말이다. "출발 오분전"이라고도 해봤다. "놀러 가는데 좀 늦으면 어떠냐"고 말하는 가족들에게 "놀러가도 시간은 꼭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게 여유있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코리안타임'이라는 말도 있었다. 한국전쟁 후 미군들이 약속시간에 늦게 나오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며 생긴 말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중요한 일을 절대로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본교회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장례예식에 가는 일이 있었다. 출발하기로 한 시간에 출발했기 때문에 늦게 도착한 분들은 함께 가지 못했다. 또 한번은 출발한 버스에 전화를 한 후 택시를 타고 중간에 타서 함께 다녀온 적도 있다. 그러다보니 시간 약속에 율법주의자처럼 되어버렸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약속에 좀 여유가 생긴 것 같지만 이 또한 도착시간을 계산해서 조금 늦게 출발할 경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오후예배 설교 부탁을 받고 2시간 전 충분한 여유를 갖고 출발했지만 교통체증으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담임목사에게 빠른 길 안내를 받아 가까스로 도착했지만 이미 15분이나 늦었다. 시간약속에 율법주의자였던 필자는 죄인이 됐다. 담임목사는 "우리 교회는 설교시간 전에 오면 늦은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은퇴한 동기들 몇 가정이 매주 가정을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린다. 가끔 늦는 경우가 생겨도 아무도 탓하는 사람이 없다. 그날 인도하고 설교하는 사람이 "시간이 되었으므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하고 종을 치면 하모니카 반주로 예배가 시작된다. 모두가 사랑하는 친구들이기에 시간 지킴에 있어 배려하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키려고 더욱 애쓴다.

교회의 공적인 생활은 기본적으로 서약하는 데서 출발한다. 공동의회에 참석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고 세례를 받을 때는 반드시 서약을 한다. 한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서약을 기억하고 지키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은 특별히 없을 것이다. 집사 권사 장로 임직은 물론 목사임직 때에도 서약을 한다. 한 교회에 위임을 받을 때에도 반드시 서약을 한다. 교인들도 이 모든 일에 함께 서약을 한다. 그리고 서약에 따르는 의무·직무 권리도 확인한다.

굳이 서약이나 의무·직무 권리를 몰라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교회 생활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래도 산본교회에서 세례자의 서약과 교인의 의무,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서약과 직무 등을 유인물로 만들어서 내 성경 찬송가에도 붙이고 교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성경 찬송에 붙이고 가끔 읽어 보게 했다.

"목사의 성직을 구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본심에서 시작한 줄로 인정합니까?"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들 때 "예"라고 눈물로 대답했지만 가끔 읽어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심으로 목사가 되었느냐" 하시면 아닌 것 같다. 어머니의 권유와 기도가 있었고 폐결핵을 앓던 중 각혈을 해서 '죽는구나' 싶은 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 아버지 살려주시면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날 밤 지혈이 되지 않았으면 죽었을텐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약속을 지키려고 목사가 된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다만 하나님께서 택해주셨고 사랑해주셔서 목사가 되었고 부족한 것 밖에는 없는 데도 사용해주셔서 오늘에 이르렀음을 확신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행복한 가정의 출발도 약속지킴에서 시작된다. 요즘은 결혼 풍속도가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주례자가 없고 사회자가 모든 것을 인도하고 신부와 신랑아버지가 당부하는 말을 하거나 권면한다. 그래도 서로의 혼인서약은 신랑신부가 함께 하고 있다. 그 서약대로만이라도 끝까지 잘 지켜 나가면 행복한 가정이 될텐데 꽤 많은 부부들이 이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어려워지는 경우를 본다.

목사도 때로는 부부간에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성경에 손을 얹고 약속하고 드린 기도가 있기에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극복해간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으로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것을 말씀하시고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고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 하시고 갈릴리에서 약속대로 제자들을 만나셨다. 남은 약속은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이 약속을 인간이 자기 생각대로 떠들어서 가짜들이 생겼다. 이 것 역시 예수님 말씀대로 되어간다. 예수님 오심에 대한 비유 중에 마태복음 25장에 다섯 처녀는 등을 가지고 기름은 가지지 않았고 다섯 쳐녀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지고 갔다.

신랑이 온다 할 때 집에서 기름을 준비해 있던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 했고 그제서야 기름을 사러갔던 처녀들은 바쁘게 준비해서 왔지만 문이 닫혀버렸다. 그들은 잔치자리에 가지 못했다. 그들이 문이 닫히기 전에 도착했더라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날과 그 때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잘 지켜야 한다.

강윤구 목사 / 산본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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