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목회는 '효자손'이다

[ 목양칼럼 ]

정영수 목사
2023년 04월 05일(수) 14:08
우리 교회가 위치한 곳은 해발 400m쯤 되는 고지대다. 이곳 주민들은 주로 고랭지 채소, 사과, 토마토를 키운다. 이곳에 부임해 어려운 사역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새벽예배다. 우리 교회는 한 해에 3번 새벽예배 시간을 변경한다. 농사 일정에 맞춰 5시30분, 5시, 4시30분으로 예배시간이 조정된다. 특히 5~7월, 3달 동안 새벽 4시 30분에 시작되는 새벽예배는 보통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보는 필자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교인들을 생각하며 정신을 가다듬곤 한다.

이곳에 부임해서 항상 하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우리 교인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차량봉사, 목욕봉사, 마을잔치였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고, 모든 봉사와 섬김 사역이 갑자기 중단됐다.

처음에는 워낙 상황이 심각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지나가다 수확한 토마토를 버리는 주민을 목격하고 급하게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왜 이 아까운 토마토를 버리시냐요?"하고 물었더니, 토마토즙을 만들려고 냉동창고에 보관 중이었는데, 이 일을 하는 제탕원에 가지 못하게 돼 버린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바로 토마토 농사를 크게 하시는 장로님을 찾아갔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필자가 장로님께 토마토 농사를 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운지를 물었더니, 장로님은 "매일 엄청난 양의 토마토가 생산되는데, 이중 상품성이 있는 토마토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제탕원에 가서 즙으로 만들고 판매할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무릎을 탁 쳤다. "아하! 바로 이거구나!" '새벽기도를 마치고 영농법인에서 나오는 토마토를 인근 지역 제탕원으로 배달하고, 직접 즙을 짠 후 그 즙을 팔아야 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그후 다시 장로님을 찾아가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토마토를 교회 봉고차로 운반해 제탕원에서 즙을 짜기 시작했다. 월, 화, 목, 금. 한 주에 네 번은 이 일을 반복했다. 그러자 토마토 포장을 맡은 반장님이 정말 고마워하셨다. 그냥 두면 버리는 토마토를 좋은 가격에 팔아주니, 이런 사역이야 말로 지쳐있는 지역 주민들의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같은 사역 아닌가? 평소 인사도 않고 지나치던 마을 주민들이 고마움을 전할 땐 정말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어려움이 없는 사역이 어디 있던가? 매일 토마토즙 상자가 30개씩 필자의 집에 쌓이기 시작했다. 중탕한 토마토즙은 채소 섭취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정말 좋은 음료지만, 건강한 사람들이 먹기엔 맛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고, 토마토즙을 판매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이 난 건지, 이곳 저곳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종 모임과 인사 선물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토마토즙을 구입했다. 알고보니 같은 시찰에 있는 목사님들이 필자를 돕기 위해 홍보에 나섰던 것이었다. 여러 동역자들의 도움으로 마을 주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사역은 지금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정영수 목사 / 상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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