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봤던 자

[ Y칼럼 ] 기형도 청년 ①

기형도 청년
2023년 03월 29일(수) 11:25
청년들에게 기도 제목을 물어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는 '진로'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등 선택의 기로에서 좋은 선택을 하길 바란다는 기도 제목이다. 선택의 문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더 크게 느껴진다. 대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야 하고, 졸업을 하면 어느 회사에 가야 할지, 회사의 규모와 산업, 연봉, 자기 적성까지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선택이 끝나면 좋으련만, 삶은 우리에게 계속 선택을 강요한다. 나의 선택으로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도 모르는데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의무는 조금은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요즘 청년들이 선택하기 더욱 어려워지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선택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옷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옷의 브랜드도 너무 많다. 또 같은 디자인이어도 색깔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옷 앞에서 무엇을 입고, 사야 할지 고민이 커지는 것이다. 가격은 물론이고 퍼스널 컬러에, 얼굴형에 맞는 깃의 너비, 옷의 퍼짐 정도까지 고려한다면 옷 고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옷 고르는 일도 이렇게 힘든데 하물며 삶의 중요한 결정인 진로는 오죽할까. 기도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을 해소할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업직부터 학원 강사, 옷 판매원, 선생님, 고객센터 상담원 등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일이면 다 해보았다. 딱 맞는 옷, 잘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해 수십 벌의 옷을 입어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하지만 이내 만족했다가 금방 재미없어졌고, 재밌다가도 금방 싫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일을 경험해 봐야 나에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을지 좌절하던 그때, 이 말씀이 떠올랐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성경적 해석을 차치하고서라도, 손에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후회를 하면 어느 작물 하나하나 제대로 심지 못한다. 일을 농사에 비유하자면, 일은 원래 힘든 것이고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좋아 보이는 다른 작물에 눈이 팔려 토마토를 심은 지 일주일 만에 갈아엎고 감자를 심고, 감자가 금방 나오지 않는다고 다시 고구마를 심는 일을 반복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변을 돌아보니 적성과 맞지 않더라도 꾸준히 자신의 밭을 일궈나간 친구들은 이미 한참 수확을 거둔 상태다. 가능한 실패하지 않으려던 마음과 조급함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거두지 못한 지금의 내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여전히 나에겐 쟁기를 들고 갈아엎어야 할 밭과 '하루'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고, 올곧게 쟁기질을 할 수 있는 '하루'가 있으니 이제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으련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노래 가사처럼, 올바른 쟁기질과 마음가짐을 가르치기 위해 주신 시간이라고 여기면 조금은 달갑다.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한 선택을 후회 없이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깨닫는다. 이제 쟁기를 다시 잡고 밭을 갈아본다. 더 나은 것을 찾기보다 내게 주어진 것이 가장 좋은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기형도 / 계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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