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통해 생의 숭고함을 전하다

[ 화제의 책 ]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3년 03월 15일(수) 17:53


김휼 시인의 사진 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걷는사람 펴냄)이 출간됐다.

지난 2007년 본보 기독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된 시인은 이후 다양한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시집은 간결한 이미지의 시편들과 누구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친근한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사진시집'이다. 67편의 시와 사진을 담아낸 시집에서 독자들은 시인의 시선으로 담아낸 일상, 자연, 풍경, 정서, 신앙을 속속들이 만나볼 수 있다.

시인은 △봄, 꽃 한송이 피우고 가는 길 △여름, 가뭇없이 밀려나는 먼 곳 △가을, 어둔 맘 그러모아 △겨울, 내가 걸어야 할 당신이라는 길 △다시 봄, 눈부신 찰나를 가지고 등의 5개의 주제를 통해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담긴 풍경을 담아내며 생의 숭고함과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전한다. 그가 담아낸 사진 속 풍경은 길을 걷다 한 번쯤 마주칠 법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시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순간을 포착해낸다. 그 시선은 미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시심으로 나아가 시인만의 언어로 세상의 이치를 '잠언'처럼 조명한다.

단풍이 우거진 가을 풍경을 두고 '한나절 쓸어봐도 마음은 비워지지 않는다'(비울 수 없다면 고요히)고 표현하거나 아스팔트 사이에 피어난 들꽃을 두고 '산다는 건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소명)이라고 말한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굽은 등을 '어둔 맘 그러모아 십자가 아래 두고 가는 길'(걸음 중 의지 부분 - 새벽기도를 마치고)이라 매만지고 낙조의 파동을 보며 '어느 사이/시간의 물결은 여기까지 날 데려왔구나'라고 회한한다.

김인자 시인은 "시는 사진을 외면하지 않았고 사진 또한 시를 낯설게 하지 않았으니 이 책을 손에 쥔 독자는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라면서 "그에게 시란 그분의 심장에 귀를 기울이고 나누는 영혼의 대화에 가까운데,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극도로 말을 아낀 한 편의 시 앞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거기 그분이 계셨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시인은 오는 31일까지 5.18기념문화센터 B1전시실에서 '김휼 시 사진전'을 개최한다. 이번 시 사진전은 시집에 담긴 시와 사진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키고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전시회에 대해 김 시인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담긴 풍경은 생의 숭고함과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가 값없이 누리는 아름다운 자연이 생명의 기반임을 알게 하고, 무엇보다 광주의 아픈 5월을 돌아보며 아물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기회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을 시각적 이미지를 대신하여 보여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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