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 주간논단 ]

최무열 목사
2023년 03월 21일(화) 06:25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통하여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꿈꾸셨다. 가을 추수에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한 모퉁이를 남겨 둠으로써, 3년마다의 십일조를 통해서, 땅의 휴경제를 통해서, 그리고 희년을 통해서, 그리고 약자보호를 위한 수많은 법령들을 통하여 실제로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없는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이루었고 또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살았을 때는 적어도 이런 행복한 사회를 실현하였다.

또한 초대교회 시대에도 실제로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강력한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적어도 거룩한 공동체 내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룩한 신앙공동체 형성을 위한 하나님의 기대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주님의 가르침은 성경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오늘도 하나님의 기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군중들이 벳새다 들녘에 모여들었다. 5천 명이 아니라 한 2만 명은 족히 되었을 성 싶다. 저녁때가 되자 걱정에 찬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저들을 보내서 사 먹게 하자고 제안하게 된다. 이 제자들은 사실 몰려든 군중들을 흩어 버리고 싶었다. 그들을 먹이는 것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아마도 이 제자들은 '책임회피형 제자'였던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뜬금없이, 그리고 단호하게 "갈 것 없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주님은 빌립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그때 빌립은 2천 데나리온의 돈으로도 그들을 먹일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빌립은'내가 계산해 보니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투로 말했던 것이다. 소위 그는 계산해 보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계산형 제자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는 말을 들은 안드레는 아마 쏜살같이 군중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애썼던 것 같고 기어이 그는 한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다 주님께 드렸다. 소위 그는 행동형 제자였던 것이다.

왜 주님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을까? 주님이 보신 것은 제자들의 의도였던 것이다. 주님은 안드레와 어린아이가 드린 그 음식을 근거로 그 많은 사람들을 충분히 먹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남는 것을 버리지 말라 하셨다. 이는 그들이 돌아갈 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손에 또 한 덩이씩 쥐어 주셨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거룩한 신앙공동체인 교회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여기서 어떤 교회는 '내 책임이 아님'을 천명하면서 우리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또 어떤 교회는 '계산해 보니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님의 명령을 일축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형 안드레처럼 주님이'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으니 아주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주님은 바로 이 교회들을 통하여 그의 거룩한 사역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때가 없었고, 오늘날처럼 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한 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때 주님은 우리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키시리라 확신해 본다.



최무열 목사/대지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