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시는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49. 희망의 기독교 종말론(7)-시한부 종말론 비판

김도훈 교수
2023년 03월 16일(목) 20:34
지난 호에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사이비 종말론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이어가려 한다. 사이비 종말론의 결정적 오류는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구체적으로 적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시한부 종말론이라고 한다. 과거 한국 교회도 시한부 종말론 때문에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회와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어느 사이비 단체의 시한부 종말론과 휴거에 대한 소동은 교회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데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궁금한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이비 종말론자들이 예수님의 재림 날짜에 집착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과거 수없이 명멸했던 시한부 종말론 현상을 분석해보면 여러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들에게만 하나님이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계시해주셨다는 잘못된 확신 때문이다. 이것을 소위 직통계시라 부른다. 때로는 종말 선포로 그들이 얻는 사적 이익의 유혹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재림과 종말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을 조장하여 물질적 이득을 취하기도 하며, 자신을 말세에 나타날 메시아로 각인시켜 자신의 말에 복종케 하기도 한다.

결론은 분명하다. 메시아 역사적으로 나타났던 시한부 종말론은 모두 틀렸다는 점이다. 그들이 받았다는 직통 계시도 거짓이고, 받았다는 날짜도 거짓이다. 본질상 거짓의 영에 사로잡혀 교회와 사회를 어지럽힌 것이다.

성경을 넘어서는 계시는 없다. 성경과 다른 계시도 없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어긋나는 하나님의 또 다른 특별 계시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순의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자신의 주관적인 신비 체험을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질문해보자. 무엇을 근거로 그들의 경험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계시가 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성경을 자신의 체험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체험을 성경이라는 기준에 비추어보아야 한다.

과거 사이비 종말론이 1999년을 굳이 고집한 이유는 창조 이후부터 역사의 종말까지를 6천 년으로 보고 7천 년을 영원한 안식의 시작으로 보는 세대 구분 방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1999년이 역사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해를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해로 보았다.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6천 년으로 한정한 이유는 창조의 날짜를 6일간의 창조로 보고 7일에 하나님이 안식하셨듯이,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과 같으므로 7천 년째를 안식 기간인 천 년 왕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이런 식으로 나누는 것이 별로 설득력이 없거니와 성경적 근거도 없다. 설사 인류 역사를 6천 년이라 가정하더라도 7천 년째에 세상의 종말과 천년왕국이 온다는 것은 추측일 뿐, 성경 어디에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사이비 종말론자들은 역사를 대체로 비관적으로 본다. 이 땅과 이 역사 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거부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는 결국 도피해야 할 현실이며, 이 땅은 오로지 소돔과 고모라일 뿐이다. 이것은 결국 역사의 주권을 하나님에게서 빼앗는 것이다. 역사의 질곡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인간의 역사 속에 하나님은 개입해오셨고, 그 역사 속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들만 구원받는다는 집단 선민주의에 빠져 있기도 했었다. 그들은 쉽게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거나 자신들의 집단에 참여하지 않으면 저주하고 비난을 퍼부었다. 우리는 이제 이런 현상을 잘 분별하고 사이비 종말론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신앙을 견고히 해야 할 것이다.

사이비 종말론의 또 하나의 오류는 성경에는 종말이나 종말의 징조들을 지칭하는 듯한 많은 숫자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666이나 7대접, 7인, '다니엘'에 나오는 일곱 이레, 육십 이레, 2300, 1260일 등의 숫자를 임의로 해석하고 대입하고 추측한다. 특별한 기준이 없다. 자기 주관과 생각대로다. 종말의 날을 먼저 설정해놓고 역산하기도 한다.

혹자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무화과를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생각하여 이런저런 숫자를 더하여 날짜를 계산하고, 어떤 이는 '다니엘'과 신약에 등장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을 주후 688년 예루살렘에 들어선 이슬람사원이라고 해석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이런저런 날짜를 더하여 예수님 재림 시기를 산출해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공산당 선언문' 발표일을 기준으로 계산하기도 한다.

계산이야 어떻든 결론은 그들의 모든 날짜 계산이 틀렸다는 점이다. 왜 이렇게 성경의 숫자들을 무리하게 해석하여 종말의 날짜를 추정하려고 하는지, 꼭 그래야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지난 세월에 비해 지금은 종말론 소동이 잠잠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이러한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는 다시 흔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반드시 주님은 다시 오시며, 심판의 날은 분명히 있다. 아무리 이단과 사이비들이 혼란케 해도 이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날이 구체적으로 몇 날 몇 시일 것이라고 역사의 시계를 거기에 맞추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며 아무 유익도 없다. 우리가 할 일은 항상 깨어 있어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것뿐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날을 모든 사람에게 감추어 두어서 그들이 모든 인간적인 안전감을 버리고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므로 항상 깨어 있어서 언제든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도록 준비케 하셨다."(33.3)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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