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 속에서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

[ 통으로읽는성경 ] 9.'통(通) 사도행전 30년' 이야기

조병호 목사
2023년 03월 08일(수) 14:47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를 고치는 장면을 묘사한 니콜라 푸생의 작품.
'통(通) 7트랙'의 여섯 번째 트랙인 '사도행전 30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기원후 64년 로마 대화재 사건까지를 기점으로, '대제사장과 사도들의 대립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땅끝까지 전파'되는 상황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이 되자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에게 임하셨다. 이들은 예루살렘 시내로 나가 각 나라 언어로 담대히 '하나님의 큰일'을 전하며 제자 시대를 열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자 하루에 3천 명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사람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주는 기적도 일으켰다.

그러자 지난 유월절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산헤드린 공회가 다시 긴장하기 시작하며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해 2차 산헤드린 공회를 열었다. 이때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그 사람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아 재판정에 증인으로 서 있게 된 것을 말하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알아야 한다고 담대하게 주장했다. 산헤드린 공회는 그들의 의도대로 재판을 이끌어갈 수 없자 '더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위협과 경고를 한 후 그들을 석방한다.

그런데도 사도들이 더 담대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해 사도들을 다시 체포했고, 3차 산헤드린 공회 재판을 열었다. 이때 율법학자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들을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이번에도 석방했다.

그런데 성령이 충만한 예루살렘교회에 먹는 문제로 시험에 드는 일이 발생한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곱 명의 뛰어난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 그들이 교회 안에서 음식 먹는 문제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도록 이끌었다. 그러자 산헤드린 공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뿌리부터 흔들기 위해 스데반을 본보기로 체포해 4차 산헤드린 공회를 열었다.

이때 스데반은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성막과 성전 이야기를 통해 예수 십자가의 단번 제사'를 증언했다. 스데반의 실력을 감당하지 못한 산헤드린 공회는 더 이상 스데반을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해 돌로 즉결 처형한다.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되면서 사도들만 남고 모두 흩어지게 된다.

스데반이 순교할 당시 증인들의 옷을 지키고 있던 사울은 '다메섹 그 순간'의 체험으로 한순간에 초기교회 박해자에서 이방인의 사도가 된다. 한편, 베드로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를 통해 선민과 이방인을 구분했던 편견이 깨지면서 비로소 '복음, 모든 민족과 함께'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는 이후 예루살렘 공회의 중요한 결정을 이끄는 핵심 토대가 된다.

스데반 순교 후, 빌립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고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는 등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안디옥교회에 바나바를 파송하고, 바나바는 바울과 동행해 1년 동안 안디옥교회를 든든히 세운 후 2년에 걸쳐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한다. 그런데 그 사이 안디옥교회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지키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전한 유대인들의 말로 인해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나나와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공회'를 열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짐을 결의한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공회는 바울도 바나바와 같은 사랑받는 형제로 결의하면서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서 마음껏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한편,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 문제로 따로 전도팀을 이끌게 돼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났고, 이때 바울은 디모데와 누가를 전도팀에 합류시키며 소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에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갈라디아서'를 써 보냈고, 이후 3차 전도여행을 떠나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제자들을 길러내며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를 써 보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쓰고 로마를 거쳐 땅끝인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소망을 굳건히 하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방문을 계획한다.

바울은 자기 목숨을 해하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 도착해 모금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공회의 당부대로 네 명의 디아스포라 유대인 서원자들과 함께 유대 민족의 정결예식인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갔다가 서원자들을 이방인으로 여긴 유대교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바울은 로마 천부장의 협조로 5차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공회원들에게 마지막 설득을 시도한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의 위협이 거칠어지자 바울은 의도적으로 '부활 신앙'을 고백함으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를 분열시켜 그곳을 빠져나와 로마 천부장의 보호 속에 가이사랴로 이송되고, 다음 날 로마 총독 벨릭스의 재판을 받고 2년간 구금된다.

이후 바울은 새로 부임한 로마 총독 베스도의 재판을 받던 중, 산헤드린 공회의 계속된 살해 위협을 피하려고 결국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 로마 황제 재판을 요구하며 죄수 이송선을 타고 로마에 도착한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황제 재판을 기다리는 2년 동안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옥중서신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를 써 보낸다. 그리고 2년 만에 잠시 자유의 몸이 된 바울은 또다시 전도여행을 계획한다. 이즈음 기록한 편지가 목회서신이라 불리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다.

그런데 기원후 64년 로마 대화재 사건이 발생하고 방화범으로 기독교 복음 1세대 지도자 200여 명이 지목돼 잔인하게 처형되자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디모데후서'를 써 보낸다.

조병호 목사 / 성경통독원 대표·하이기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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