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는 있는가? 현대 의학의 임사체험 (near death experience) 논쟁 (2)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46. 희망의 종말론(4)

김도훈 교수
2023년 02월 21일(화) 08:02
사후세계는 있는가? 참으로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우리는 종종, 아니 거의 매일 죽음과 죽음 이후를 망각하고 살아간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도, 죽음 이후의 삶도 없으므로 지금 여기의 삶을 즐기자고 말한다. 고대 철학자 에피큐로스는 "내가 살아 있다면 나는 죽지 않았다. 내가 죽었다면 나는 살아 있지 않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왜 나는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가?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삶에 대한 나의 생각을 손상시키며 나의 노동을 방해한다. 이 삶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죽음과 함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지나간다"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과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인가? 죽음 이후에도 남아 사후세계를 살아가는 그 무엇(영혼)이 인간에게는 전혀 없다는 것인가? 근대 과학의 발전은 영혼과 사후세계의 부정으로 이어졌다. 죽음 이후의 삶이나,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존속하는 영혼의 개념은 전형적인 종교의 영역으로 한정되었다. 이런 이야기는 전혀 과학이 아닌 미신과 망상으로, 심지어는 뇌의 발작으로 치부되었다. 드라마나 영화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거다. 뇌과학의 태동은 더욱 이러한 경향을 부추겼다. 육체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있는 영혼(마음)에 대해 저술한 뇌과학자들이 일부 있었으나 편견과 선입견이 전제된 비과학적인 연구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최근 과학계에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개인적 경험의 진술로 치부되거나 종교적 신앙체험으로 여겨지던 <임사체험>이 <임사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여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사체험은 1975년 의사 레이몬드 무디(Raymond Moody)의 책 〈생명 이후의 생명>(Life after Life)의 출판과 더불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 책이 논란이 된 것은 그가 냉철한 이성을 지닌 철학자였으며 정신과 의사였고 대학의 교수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은 단순히 자신의 경험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150여 명의 방대한 임사체험 기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이후에도 이와 관련한 수많은 연구들을 전문학술지에 발표했다. 심장외과 의사인 마이클 세이봄(M. Sabom)의 <빛과 죽음>, 방사건 종양의학과 교수인 제프리 롱(J. Long), <사후 삶의 증거:임사체험학>, 버지니아 대학의 정신의학 및 신경행동과학 명예 교수인 <이후>,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이며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이븐 알렉산더의 <천국의 증거> 등의 책들과 핌 반 롬멜(P. Van Lommel)의 임사체험 연구가 유명 의학 전문 잡지인 란셋(Lancet)에 실리는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의 책과 전문 연구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신과 의사이며 임종과 죽음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퀴블러-로스(Elisabeth Kubler-Ross)는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다"라며 사후의 삶을 인정하였다. 서울대 의대 교수인 정현채 교수는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죽음으로써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면 자살하는 이들이 크게 줄 것이며, 말기 암 환자 등 죽음을 앞둔 이들도 존재가 소멸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많은 사람이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직면하고 사유하여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다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일이라는 자각에서…'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고.

임사학에 대해 신경학자들의 많은 반대가 제기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임상체험이 사후세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조차도 한마디로 모두 뇌의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이븐 알렉산더는 "어떤 가설로도 관문과 중심근원의 경험(초강력 현실)이 지닌 풍부하고도 복잡한 상호작용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결과적으로 임사체험에 대한 연구는 종교학, 철학, 의학뿐 아니라 신학적, 신앙적, 변증적 논의에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사후의 삶, 영혼의 존재를 수월하게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를 제공해준 셈이다. 물론 과학이 증명했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믿을 수 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그리고 임사학의 주장이 반드시 성경적이거나 신학적이라는 말도 아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바른 이해는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과학의 논쟁은 죽음과 영혼에 대한 기독교의 주장이나 교리가 비합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인 것은 아니라는 단초를 제공해 준 것이 사실이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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