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달에 순교적 순종의 삶을 생각한다

[ 주간논단 ]

차종순 목사
2022년 11월 29일(화) 08:25
기독교는 베들레헴의 성육신으로 시작하여 예루살렘의 부활로써 완성된다. 이 두 곳은 다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용서와 아들 하나님의 순종이 만나는 곳이다. 에덴의 선악과와 불순종이 베들레헴의 성육신으로부터 예루살렘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순종으로 완성되리라는 선포의 날이 크리스마스이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나란히 옆으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 듣고 또한 대충 들었을뿐 만아니라 자신들의 생각까지 섞어서 들었지만,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부터 유대 땅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아들이시면서도 '아래로 내려가서'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셨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에덴의 아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듣고, 내 생각을 섞어서 듣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가 '불순종의 자녀'(롬11:30,31,32)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아무리 말하여도 설득되지 않는 막무가내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셔야 하고,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써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벌써 여섯 차례에 걸쳐서, 필자는 재직하는 신동아학원의 교직원들과 함께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교회'와 강진군 '다산초당'을 찾아보았다. 순교자들은 방문자들에게 "나처럼 살으세요"라고 말하는 반면에, 배교를 통해 삶을 되찾은 사람들은 "나처럼 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영암에서는 박석현 목사(1901-1950)와 그의 가족(장모 나옥매 전도사/사모/아들)을 포함한 35명 그리고 강진에서는 다산의 형 정약종(1760-1801)과 그의 가족의 확실한 순교를 닮아보려는 마음을 다지게 된다. 반면에, 순교/배교의 논란이 있는 다산의 매형 이승훈(1756-1801)과 처남 다산의 '변(辨)'을 읽으면서 또한 우리의 신앙과 삶을 읽게 된다. 먼저 배교의 변을 발표하여 목숨을 부지하였지만, 결국은 천주학쟁이로 인정되어 죽임/순교당한 이승훈이 말한다.

"내가 서학을 버리는 것은 서학이 말하는 것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 진리를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일세 … 사실 천주를 믿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 한 번 믿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네 … 그런데 그러지가 않았네. 신앙은 내게 끝없는 결단을 요구했네 … 용기를 요구했네 … 희생을 요구했네. 신앙이란 그 결단과 희생과 용기를 밑거름 삼아 성장하는 것이었네. 나는 신앙이 요구하는 것을 계속 내 줄 능력이 없었던 것일세."

시간이 흐르면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매형의 변을 점점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60세가 넘어서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되었고, 이어서 우리 후학들에게 후회에 가득 찬 '자신의 신앙고백'의 변을 남긴다.

"믿음은 버리려고 한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반대로 얻으려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 20대 시절 뜨겁게 천주를 믿었던 그 흔적이,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구세주 예수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일까 두려워하던 30대 시절의 방황과 번민의 흔적이 60살 노인이 된 지금도 제 몸과 영혼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합니다 … 그것이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믿음은 절대자가 주는 선물같은 것이 아닐까요? 개인의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믿는 일이 그렇듯 어려운 건 아닐까요? 혹시 제 마음 속에 죽은 믿음이라도 믿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제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자의 선물일진대 아직 그런 것이 제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산은 유배생활 18년을 그리고 또 다른 18년을 더 살았던 36년의 세월 동안 '목민심서'를 비롯한 수 많은 책의 기록을 남긴 것이 "영달의 길에서 자취를 멀리하여 자정(自靖)하는 뜻을 본받고자 한" 마음의 산물이었음을 알았다.

2022년 성육신의 달, 우리는 예수님과 순교자들의 순종의 삶을 닮아보려 한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에서의 영달을 멀리한 채 육신으로 오셨을뿐 만아니라 육신으로 계실 때에 눈물과 통곡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우리 한국교회도 영달의 길에서 멀어짐으로써 스스로 편안해지기(自靖)를 바란다.



차종순 목사 / 전 호남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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