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어승마(御乘馬)

[ 목양칼럼 ]

황인돈 목사
2022년 11월 30일(수) 08:12
임금이 타는 말을 어승마(御乘馬), 어마(御馬)라 하는데 '곤룡포를 입힌다'하여 '곤마(袞馬)'라고도 한다.

필자의 20대 신학생이었던 시절에 재정이 어려운 시골 교회에 자원하여 교육전도사로 처음 사역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갑자기 사임하는 바람에 잠시 동안 교회 사역의 전부를 책임지게 되었다. 나이 어린 전도사를 교인들은 극진히 대접하고 섬겼다. 결혼 안한 싱글이었으니 끼니마다 먹을 것뿐 아니라 입을 것까지 챙겨주었다. 처음에는 그런 대우가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작은 소홀함에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부터 뵙던 연로하신 목사님을 찾아뵐 일이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시는 말씀에 "교인들이 저를 예수님처럼 떠받들고 잘 대접해줍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얼굴이 이내 굳어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인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만 전도사님의 버릇을 나쁘게 할까 염려된다"라고 말이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교인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아도 마치 당연한 듯 "잘 먹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목사님들을 가끔 목격했었다. 그 때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날 밤 '어리석은 어승마'라는 우화를 떠올려보았다.

옛날 옛적에 준마로 소문난 어승마가 있었다. 임금은 말을 무척 아꼈고 내사복시(임금이 타는 말을 관리하는 청)에서는 말을 임금 모시듯 극진히 보살폈다.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가장 좋은 자리에서 잠을 자게 했다. 말이 임금을 태우고 다닐 때면 길을 가던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 엎드렸다. 말은 마치 자기가 임금이 된 듯 우쭐했다. 우쭐함은 날로 더 심해졌다.

그런데 말에게는 가장 불편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때문에 말은 더 행복해질 수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임금을 무겁게 태우고 다니는 일이었다. '임금만 없다면…'.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말은 임금을 태우고 길을 나섰다. 사람들은 길바닥에 바짝 엎드려 임금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말은 그들 앞에 일부러 말발굽소리를 크게 내며 따그닥 따그닥 걸어갔다. 날은 더워지고 등에 탄 임금님은 점점 더 무거웠다. 그 때 갑자기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껑충껑충 날뛰었다. 결국 임금은 말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말은 즉각 끌려가 도살되었다.

어릴 적 우화집에서 읽었을 것 같은 '어리석은 어승마'를 생각하며 그날 밤 잠을 뒤척였다. 그리고 평생의 목회 교훈으로 삼았다. '교인들의 섬김은 주님께 함이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대접 받는 것을 감사히 여기자. 섬기는 교인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자.'

20대에 가졌던 결심을 지금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겸손할 줄 알고 고마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면 평생의 목회가 행복하리라 여기면서 오늘도 목회 현장을 지켜나간다.



황인돈 목사 / 아름다운충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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