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

[ 가정예배 ] 2022년 11월 28일 드리는 가정예배

차인숙 목사
2022년 11월 28일(월) 00:10

차인숙 목사

▶본문 : 요한복음 14장 27절

▶찬송 : 408장



인간은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행복을 소원한다. 그토록 원하는 행복을 위해 분투하고 씨름하지만 가정, 건강, 장래 문제 등 온갖 걱정 속에서 살아간다. 근심과 염려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제각기 수고하고 무거운 고생 보따리를 지고서 인생 고갯길을 힘들게 오르내린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되면서 평안을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인간의 근본적인 뿌리 감정은 불안이 되었고 평안보다는 불안과 가까운 사이가 되고 말았다.

평안이란 걱정이나 탈이 없음을 일컫는다. 아무 근심이 없는 안정되고 무탈한 상태인 안녕, 편안, 평강은 다 같은 뜻이다. 아무리 경사가 겹쳐도 평안이 없다면 기쁘지 않다. 금은보화와 산해진미를 가득 쌓아 놓고 궁궐 같은 집에서 산다 해도 그 속에 평안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평안이 없다면 부요함도 기쁨도 즐거움도 다 헛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재난이 하루가 멀다시피 일어나는 세상사 속에서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불안 덩어리 인간에게 평안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수님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기에 평안 인사를 많이 하셨다. 열두 제자를 마을로 내보내시며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 하기를 빌라"라고 하셨고 부활 후 첫날 만난 여자들에게 하신 첫인사도 "평안하냐"였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앞으로 될 일과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평안과는 다른 평안을 주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떻게 다른 평안일까? 세상의 평안은 대부분 육신적인 평안이다. 사람들은 대개 소유 측면에서 안락한 집과 넉넉한 재물과 건강만 있으면 행복하고 평안할 줄로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가 생명을 위해 필요하지만 소유의 풍성함이 바로 생명이 되지는 않는다. 돈이나 지위나 건강이 평안을 주는 것 같지만 이런 것들은 영원하지가 못하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시대의 상황과 형편 그리고 세상 풍조에 따라 흔들리고 변한다. 그러나 이런 세상 평안과는 전혀 다른 평안이 우리에게는 주어졌다.

예수님께서는 유한한 평안이 아닌 영원한 평안을 주셨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 반석 같은 평안이다. 요지부동의 이 평안은 근원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이기에 비교되거나 맞설 만한 것이 없는 절대적인 평안이다. 심지어는 두려운 죽음 앞에서도 평안이 보장된다. 세상은 알지 못하는 이런 평안을 가진 사람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거꾸러지지 않는다. 히브리서에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잠시 잠깐의 평안보다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평안을 사모하며 삶 속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기도

평안의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친히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차인숙 목사/작은빛선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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