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어떻게 해결할까?

이상억 교수
2022년 11월 08일(화) 14:16
지난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 참혹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목회 상담, 기독교 상담을 하는 제가 가진 생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이태원에서 열린 할로윈 축제에 참여했다는 이유를 들어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해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비난을 멈춰야겠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며 슬픔을 당한 유가족들을 보듬어야 할 때입니다. 느닷없이 친구와 동료를 떠나보낸 사람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더불어 참사로 인해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돌봐야합니다. 유무형의 큰 피해를 당해 상처 입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끌어안아야합니다. 훈수 두듯 무책임하게 내뱉는 비판은 피해자 유가족은 물론 부상자들에게 가해지는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슬픔과 고통을 당한 사람들을 더욱 참담하게 만들어 심리적 트라우마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거나 혼란한 마음이 들면 참을 수 없어 합니다. 원인을 규명하고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얼른 안정을 찾고 신속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우리는 근본적으로 불안합니다. 불안하지 않은 듯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니 불안하지 않기 위해 더 안정된 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초자연적, 초능력적 존재가 아니라 한계가 있는 사람입니다. 좋지 않은 전화나, 소식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 즉시로 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소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불안과 친해져야 합니다. 불안과 친해진다는 말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우리의 불안한 모습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안과 함께 하셔서 우리로는 어쩔 수 없는 불안 그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평안을 갖게 하실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이러니까 그런 일을 경험하거야." "왜 그런 자리에 갔니? 너에게 문제가 있는 거야." "인간적인 욕심과 죄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한거야."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을 데려와서 "이 장애가 이 사람 죄때문입니까? 혹은 이 사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생각 없이 내뱉는 정죄나 판단의 말들은, 혹 자신의 불안을 상쇄시켜 안정감을 가지려는 욕심은 아닐까요? 누군가를 위한 조언은 그 누군가를 살릴 때 조언으로서 생명력을 갖습니다. 하지만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그 말들은 비수처럼 심장에 꽂히게 됩니다. 그를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5절은 이렇게 요청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참사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참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유흥과 쾌락에 빠진 사람들이라 함부로 매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들과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면 좋겠습니다.

둘째, 사고 당시의 현장 사진과 영상을 여과 없이 유포하거나 공유해서는 안 됩니다. 사고 당시의 참혹한 영상을 전달하고, 심지어 현장감을 살린다며 정제되지 않은 영상을 유포하기도 했는데, 이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은 물론 그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플래시백(flashback) 현상을 갖게 합니다. 상담심리학에서 말하는 플래시백 현상이란 단지 어떤 기억을 떠올리는 수준이 아닙니다. 사진기 플래시가 터졌을 때 잠시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 생각과 기억에 매몰되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람의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각한 외상, 즉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말합니다. 트라우마란 심각한 경험, 즉 전쟁이나 자연재해, 교통사고와 같은 사고나 극심한 사건으로 인해 갖게 된 심리적 충격을 의미합니다. PTSD 환자는 이러한 충격에 대해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며 무기력과 무의미의 늪에서 불면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플래시백과 같은 현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사고 당사자만이 아니라 해당 영상을 본 다수의 국민들까지 간접적인 심리내적인 상처를 유발시킬 수 있기에 사고 영상 유포는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면 반드시 자신의 정서적-심리적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아픔이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정신건강학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ubler-Ross)는 애도의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경험들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먼저 부정하고 부인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리 없다."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대부분 화를 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애도의 경험인 분노입니다. 다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자기합리화처럼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 이 정도까지는 봐 드릴게요.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됩니다..." 그러나 이 타협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깊은 슬픔을 경험합니다. 슬픔은 무기력과 무의미와 함께 사람을 절망하게하기도 하지만,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는 마음까지 경험한 사람들은 이때 경험하는 슬픔을 통해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슬픔이 지혜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기쁠 때 깨닫기 힘듭니다. 하지만 홀로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할 때, '인생이 그런 것이라고,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깨닫게 됩니다. 지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이 열어 준 지혜로 마지막 애도의 경험인 수용은 가능합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별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애도의 다섯 가지 특징적인 경험이 있다는 말은 애도의 과정이 그만큼 지난한 과정일 수 있다는 말이며, 동시에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정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애도의 다양한 경험들, 부정하고, 분노하고, 타협하려 들고, 슬퍼하는 이 모든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함부로 자신을 못났다 여기거나,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쓸모없는 존재'라며 자신을 몰아세워서는 안 됩니다.

상처를 해소하는 애도의 과정을 잘 거쳐 가기 위해서 때로 환기적 대상인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쌓은 아픔과 원망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또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주는 환기적 공간을 찾아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나만의 바다, 나만의 산, 나만의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서 펑펑 울어 보기도 하고, 신나게 소리도 질러보고, 또 푸근한 쉼을 누려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글로 나타내거나, 그림이나, 음악, 다양한 신체 동작 등 표현하여 나타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일종의 버킷리스트처럼 할 수 있고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자신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사주는 마음으로 말해 보는 것입니다. "미안해, 힘들었지? 고마워, 사랑해." 자신을 토닥이며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자기 돌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이나 공포가 몰려온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독교 상담 전문가들이 여러분의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모쪼록 참사의 피해자 유가족과 부상자, 당시 현장에 있었던 많은 분들이, 혹은 방송과 매체를 통해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우리의 작은 움직임을 통해 회복되실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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