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을 맞아, 희망한다!

[ 주간논단 ]

차종순 목사
2022년 11월 01일(화) 08:07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전달한 최대의 선물은 '희망'이었다. 고종 임금은 미국의 군인이 자신과 나라를 지켜줄 것을 원하였지만, 하나님은 미국의 선교사들을 보내어 하류층에 속한 백성들에게 영적인 각성을 일으킴으로써 이 땅의 희망이 되게 하셨다. 서경조 목사가 추수감사절 제정을 부르짖었을 때에, 이것을 감사하였을까?

선교정책에 따라 '노동자, 하층민, 부녀자, 아동' 계층이 교회와 교인의 주류를 이루었고, 그 자녀들이 한국사회의 중류층으로 부상하는 것을 보면서 기독교는 이 땅의 희망이었다. 선교사의 사택을 방문하였던 여성 구경꾼(Koogyungers)들 가운데 어떤 부인은 "아이고(I go) 이렇게 좋은 집을 보았으니 어찌 살꼬!"하면서 떠났지만, 그것은 절망이 아니고 희망과 각오의 다짐이었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하층민에게 희망이 되었던 최고의 혜택은 공부, 배움, 교회학교, 선교학교였다. 예를 든다면, 1911년 2월에 전주에서 개최된 영성반, 10일 성경공부반에 221명이 참석하여 '성경 요리문답, 창세기, 예수님 일대기, 요한복음, 출애굽기, 사도행전, 구약성서 인물, 소요리문답, 구약성서에 예시된 그리스도, 비유와 기적, 음악, 생리, 위생' 등 13과목을 하루 종일 배웠다.

이렇게 하여, 조선의 건국 초기부터 10%의 양반층이 유학(구학문)을 통한 知(지)를 독점한 후 →官(관)으로 진출함으로써 →權(권)을 얻고, 이어서 →財(재)를 얻어 왔던 관료주의 사회속으로 …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당시 미국 남자인구의 1%가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상황에서 4년제 대학 졸업 후 또 다시 3년 혹은 4년의 신학과 의학을 공부한 후 한국에 와서 조선의 90%를 차지한 하층민들에게 기독교(신학문)를 가르침으로써 피교육자를 한국사회의 새로운 지식층으로 등장시켰던 것이다.

어떻게? 엄격한 교회와 학교 교육을 통하여! 학습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주간의 수업'을 진행하고, 일년 동안 공부하게 한 후 개인 전도사역에 열심한다면 교인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사실 한국의 교회 문은 세계에서 가장 좁았다(Miss McQueen, The Missionary, July, 1910). 이 뿐인가? 학습교인이 세례 교인이 되려면 아홉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였다.

짧게 정리한다면, "①개종의 동기의 순수성, ②공예배 참석, ③헌금, ④아침 저녁 가정예배, ⑤4, 5명 전도, ⑥제사 금지, ⑦술/담배 금지, ⑧첫번째 부인과 살기, ⑨지역 사람들로부터 변하였다는 인정받기"였다. 교회 출석으로부터 학습과 세례과정을 다 통과하기란 바늘구멍이었다. 달랐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사회로부터 인정받았다. 초기 예루살렘교회가 "칭송을 받듯이" 결과는 한국 인구의 1%였던 20만 세례교인이 삼일만세운동의 주축세력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지 않았던가!

이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한국교회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코로나적 상황은 한국교회에게 부흥과 성장위주의 시간이 마지막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희망의 이정표이다.

코로나 상황은 황제적 목회자의 방향지시에 따르던 평신도들이 참 황제이신 하나님의 목소리를 내면적으로 듣고 따르려는 시대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인터넷 예배를 통하여, 평신도들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기간에 초기 선교사들이 행하였던 복음적-강해설교의 깊은 맛을 알게 됨으로써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닮아보려고 다짐하는 평신도들이 점증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최근 영국 여왕(최초의 장로교 왕)의 죽음을 본 어떤 분의 글을 접하였다. "나는 엘리자베스의 신앙이 강하게, 조용하게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았으며 … 여왕은 나에게 뒤로 물러나(behind-the-scene), 결코 자신을 튀게하려고 하지 않았던(never-pompous-point-to-self)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였다."

이 시점에 한국교회가 예수님처럼, 초기 선교사들처럼, 초기 한국교회 교인들처럼, 낮은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시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됨으로써 한국교회가 이 땅의 희망으로 다시 일어설 것을 희망하면서 감사한다.

차종순 목사 / 전 호남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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