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 목양칼럼 ]

김영수 목사
2022년 10월 26일(수) 08:22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현저하게 감퇴됨을 느낀다. 때로는 '치매?'라는 두려움 섞인 의문을 가져보기도 한다. 다른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도 속상할 일이지만, 목사로서 눈앞에 있는 성도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참 난감하다. 공식석상에서, 예컨대 예배를 인도하거나, 기도하거나 할 때, 떠올라야 할 이름이나 내용이 깜깜해질 경우도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기억력 하나만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다. 기억력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이야기 하나. 청년 시절의 이야기다. 길 가다가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학교 동창이었는데,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알아 볼 수는 있는 정도의 관계인 친구였다. 그 친구와 함께 가던 동행이 있었다. 그 사람은 처음 보는 '친구의 친구'였던 셈이다. 그 친구의 친구와 통성명을 하고 지나쳤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났을 때,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서 '아무개씨,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친구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자기 이름을 기억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기억력이 목회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야 할 텐데, 정말 스스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기억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나중의 문제는 나중의 일이고, 우선 당장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니 문제다.

어린 시절, 어느 글에서 읽었던 이야기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체로 이런 내용의 글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 무엇인가?' 그 답은 '망각'이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잊는 것은 참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잊거나, 또는 그 사람을 기억조차 못하게 된다면? 그건 참으로 두렵지 않겠는가? 동시에 이렇게 질문도 했었다. '사람에게 가장 고마운 일이 무엇인가?' 그 답 역시 '망각'이었다. 이유는, 잊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 슬픈 일을 잊지 못한다면,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공감이 가는 글이 아닐 수 없다.

'망각'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장 고마운 일 중의 하나이기도하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발적인 망각'이야 말로 큰 은혜 중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돌아보면, 하나님 앞에서 기억하기에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셀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잊어주신다. 하나님의 기억력에 빈틈이 있겠는가? 잊으실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잊어주신다. 아니 잊은 것으로 쳐주신다.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향해서, 사람을 향해서 이런 망각의 기능을 정말 잘 적용한다면, 목회가 훨씬 수월해지고, 평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나님께서는 그러실 일이 없지만, 사람은 많은 아픔을 주기도 하고, 서운함을 가지게도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한 가지 한 가지 곱씹어 보면,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또 나아가 괘씸하게 여겨질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 삶의 현장, 또 목회의 현장 아닌가?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망각'의 기능을 사용한다면, 평안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서운한 것, 화나는 것, 괘씸한 것들은 잘 잊어버리고, 고마운 것, 감사한 것, 잊어서는 안 될 일들은 잘 기억하는 기억력의 은사를 받고 싶다. 기억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생각할 때 이런 공상을 해보곤 한다.



김영수 목사 / 예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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