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문에" - 악의 존재에 대한 변증적 해명(2)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29. 기독교신론(7)

김도훈 교수
2022년 10월 19일(수) 06:30
"악이 있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무신론의 주장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악의 존재 사이의 모순성, 하나님과 악의 양립 불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번에 이은 또 하나의 질문은 바로 "악과 하나님은 양립 불가능한가, 그래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해서는 안되는가"하는 질문이다. 우리의 결론은 "양립 가능하다"이다. 악이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는 무신론자들이나 회의주의자들이 질문할 때 항상 수동적이라는 점이다. 무신론자들은 묻고 우리는 답변하려고 한다. 때로는 답변이 궁하게 되어 수세에 몰리게 되고 당황하게 된다. 우리는 이들과 토론하는 방식, 이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을 익힐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질문에 역질문으로 대응하신 것처럼, 우리도 때론 역으로 질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라고 한다면 - 그 질문 자체가 모순이지만 - 이렇게 되물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너희들이 먼저 과학적으로 증명해 봐, 그럼 나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테니 …" 그들은 당황할 것이다. 사실상 하나님이 없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악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악의 문제로 기독교의 진리를 무너뜨렸다고 그들은 생각할지 모르지만, "악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없다"는 논리가 그리 날 선 검은 아니다. 역의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논리를 뒤집어 물으면 된다. 악이 있어서 하나님이 없다면, 선이 있으므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논리도 타당하지 않은가? 당연히 이런 논리도 성립한다. 게다가 악과 하나님이 양립 가능하다는 설명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역으로 공격하고 질문하면 우리의 생각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 하나의 시도는 된다. 이런 논리적 접근을 시도한 이들이 바로 변증가들이다.

이 시대의 탁월한 변증가인 크레이그(W.L.Criag)는 악과 하나님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접근을 시도하였다. 첫째, "하나님이 세상에 악을 허용하는 데에는 도덕적으로 적절한 이유가 있다"는 전제가 성립된다면 양립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악과 고통을 허용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증명해야 한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세상에 악과 고통을 허용했을 리가 없다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셋째, 악을 허용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적절한 의도가 있을지 어떻게 아는가? 자유의지를 통해 악과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은 아닐까? 넷째, 하나님께서 악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무신론자들은 이런 주장과 질문에 먼저 답변해야 할 것이다. 증명이나 답이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지만 - 논리적으로건 실재적으로건 더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궁금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 세상의 악을 제거하지 않고 허용하시는가 말이다. 그 답은 간단하다. 사랑 때문이다. 자신이 만드신 인간을 하나님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선하지 않아서도 전능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만일 하나님이 악을 즉시 제거하신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며, 누가 살아 생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종종 대학살을 저지르는 히틀러 같은 인간만 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은 마치 정의고 선인 것처럼, 작은 악은 악이 아닌 것처럼, 왜 도대체 저런 인간을 막지 않느냐고 항의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한오라기의 머리털만큼의 죄도 죄이고, 한 알갱이의 모래알만큼의 악도 악이다. 하나님이 어떤 악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인간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인간의 약함과 욕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의 논리대로, 하나님이 당장 악을 제거하신다면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들부터 제거하셨을 것이다. 전쟁보다 더 큰 악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이니까. 역설적이지만 그들이 생존해 있는 것 자체가 그들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 때문이 아닐까.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기독교는 이것을 십자가라고 부른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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