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 친절한공보씨 ]

이진형 목사
2022년 10월 10일(월) 09:32
누가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보인가요, 보수인가요?'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서 정치적인 양극화 현상이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대한민국에 오시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실까요? 아니면 태극기를 들고 시청 앞으로 나가실까요? 이런 개념으로 질문을 한다면 이미 우리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대립적인 정치대결구도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보다는 '누구의 편이냐?'가 더 큰 관심사인 것이죠.

그런 면에서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그 어느 쪽에도 계시지 않는다고 할 수 도 있고, 양쪽에 계신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정치적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제자그룹은 정치적으로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같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칼을 차고 다니면서 로마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로마 정부의 하수인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예수님이 부르셨고, 서로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이 로마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물어봤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로마에 세금으로 내는 은전에 새겨진 얼굴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로마의 가이사의 형상이라고 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이 회색분자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세속정치권 어느 편에만 속하는 개념이 아니라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만약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부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어느 쪽에도 기울어질 수가 없습니다. 진보의 개념을 무신론과 유물론 사상과 연관한다면 당연히 예수님은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보수의 개념을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거기도 예수님이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올바른 가치'에 대한 태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좀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사회적 틀이나 제도에 대한 태도'로 본다면 예수님은 진보적일까요? 보수적일까요?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상당히 진보적인 분이셨습니다. 율법에는 안식일에 노동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또, 그 당시 성전에서 백성들이 환전을 하고 제사용 동물을 파는 일은 흔한 일이었는데, 예수님은 상을 다 엎으시고 그런 사람들을 성전에서 다 내쫓으셨습니다. 굉장히 파격적인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그런 일들을 하신 것은 성경에 기록된 원래의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한 열정으로 보면 예수님은 보수적인 분이신 것이죠.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지키려는 행동이었습니다.

또,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어떤 사람들을 배려하는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진보주의 사람들은 '동물, 약자, 아동, 소수민족 사람들'처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진보주의적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들과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방인이나 세리, 창녀들과 같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죄인들과도 거리낌 없이 어울리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 사람들은 부자나 사회에 특별한 기여를 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배려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와 사회적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가까이 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부자나 지도자들을 대적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 중의 하나가 공평의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진보주의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이 나누는 '평등'을 공평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보수주의 사람들은 능력이 있거나 집단을 위해서 뛰어난 기여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을 공평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두 가지 가치가 다 반영되어 있습니다. 포도원 일꾼 비유에서 보면, 아침 일찍 와서 일한 사람이나 뒤늦게 온 사람이나 주인이 똑같은 임금을 줍니다. 그래서 일찍 온 사람들이 화를 냅니다. 예수님은 제도적으로 똑같이 준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으로 마땅한 사례 이상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달란트 비유를 보면 주인이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줍니다. 성경에 보면 각 사람의 '재능대로' 주었다고 말합니다. 재능에 따라서 다르게 주는 것을 예수님은 불공평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청년에게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돕는 사람들 중에는 아리마대 요셉처럼 부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청년의 마음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 나누든지 그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진보든지 보수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영미권에서 주목 받는 사회심리학자이자 뉴욕대 교수인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이라는 책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이슈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순간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진보적이건 보수적인건 '이건 옳다 또는 틀리다'는 판단을 직관적으로 먼저 합니다. 쉽게 말해서 감정적 판단이 앞선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성적 추론은 그 뒤에 이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때의 이성적인 생각은 단지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올바른 가치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 맞는가를 생각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대화가 막히고 대립이 심해집니다. 제각각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정보들을 주로 접합니다. 이렇게 진보주의나 보수주의적인 판단이 너무 깊이 깔려있으면, 예수님의 말씀도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의에 따라서 진보적이기도 하고 보수적이기도 합니다. 양쪽의 가치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느 정도 다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어느 한쪽으로 정의하려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진보와 보수의 주장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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