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가 삶의 능력인가

[ 가정예배 ] 2022년 9월 30일 드리는 가정예배

송철호 목사
2022년 09월 30일(금) 00:10
송철호 목사
▶본문 : 아가 2장 3~4절

▶찬송 : 93장



프로이드는 과학이 크게 발달하면 종교가 필요없다고 했고, 칼 막스는 종교를 아편과 같다고 했지만 종교가 인생의 위급한 순간에 큰 도움이 되어 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험을 들어두는 심정으로 종교를 갖는 경향이 없지 않다. 사실 종교는 유한한 인간이 자기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 무한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신을 의지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자기의 안전과 평안에 대해서 스스로 자신이 넘치거나 혹은 아무 걱정이 없으면 종교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신실한 크리스찬은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를 안전을 위한 보험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그 범주에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종교가 아닌 삶의 능력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삶의 능력이 부어진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3절)라고 말한다. 산길을 가다가 수풀 가운데 우뚝 선 사과나무를 보면 어떤 생각, 어떤 느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이미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플 때, 사과 하나 아니 둘 따서 그 나무 그늘에 앉아 깨물어 먹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달콤한 과즙으로 온 입가를 적신 채 해맑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아마도 진정한 크리스찬이 느끼는 예수님의 모습일 것이다. 힘들고 목마른 인생 여정에서 예수님은 삶의 능력이신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4절)라고 말한다. 깃발은 소속의 의미도 있고 승리의 뜻도 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크리스찬은 승리의 삶을 살고 그의 것, 그의 소속임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불교는 초상집 같고, 유교는 제사집 같은데, 기독교는 잔치집 같더라"라는 말이 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큰 시련을 겪고 있으면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라고 편지를 보냈다. 사도 요한은 편지글 서두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1:4)라고 말했다. 진정 크리스찬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쁘게 살아간다.

종교는 필요할 때만 찾는 임시적인 것이지만 삶의 능력은 항상 늘 언제나 필요한 것인 바 바로 기독교가 그것을 우리에게 보장해준다. 다만 내 스스로가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라고 말씀하셨다. 성실한 말씀과 기도의 삶으로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도하자.



오늘의기도

성실한 말씀과 기도의 삶으로 항상 주 안에 있어 허락하시는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바르고 복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철호 목사/유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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