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아의 리놀륨 판화 'The creation of Eve'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09월 12일(월) 13:17
민경아, The creation of Eve, 리놀륨 판화, 2009년.
민경아의 2009년 작품 'The Creation of Eve'다. 민경아는 국내외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며 장신대, 홍익대 등에서 교수하는 판화가다. 그는 이미지의 차용과 통섭을 자신의 조형 방법으로 선택했다. 차용되고 통섭된 이미지는 원래의 해석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는데 그는 이것을 '돌출'이라고 부르며, 거기서 새롭게 탄생되는 진리는 관람자 각자의 몫으로 돌린다. 이는 다양한 해석으로 각자에게 살아있는 작품이 되게하는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한 현상으로, 작품과 관람자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체계를 설정한 것이다. 그는 리놀륨판 위에 원하는 이미지를 그리고 이미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깎아낸 후 돌출부에 잉크를 묻힌다. 그리고 종이를 덮어 압력으로 찍어낸다. 품이 많이 드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로 그렸고, 수많은 패러디로 우리에게 익숙한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를 차용했다. 하나님과 아담의 손가락이 아슬아슬하게 접촉하는 순간을 사람이 생령이 되는 순간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창세기 2장 7절의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는 말씀에서 착안했다.

민경아는 작가노트에서 명화의 패러디 형식으로 성경의 내용을 표현한 이유에 대해 동양과 서양, 다양한 시대의 이미지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성경 이야기가 시공간을 초월해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봐도 명백한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도상을 검게 묵화시키면서 아담의 자리에 하나님에게서 고개를 돌린 이브를 배치했다. 그는 '이브의 창조'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작품에 미켈란젤로의 것을 비롯한 기존에 존재하던 '이브의 창조' 도상 대신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해 생명을 얻는 강렬한 메시지를 가진 아담의 창조 도상을 사용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창조의 손가락은 그녀에게도 동일하게 생명을 주고 있다. 이 순간은 구불거리는 선 띠로 동심원을 이루며 확장하는 배경 이미지와 통섭되면서 평면 속에 흐르는 시간을 만들어 낸다. 동심원의 중심에 위치한 하나님의 손가락은 창조의 시원부터 끝모르는 영원까지 생명의 기원이며 공급자임을 보게한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옵티컬 이미지(Op Art)위로 영원한 시간 속의 한 조각을 사는 캐릭터들이 부유한다. 조선시대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한국인들과 스파이더맨,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은 창조부터 종말까지 반복되는 세대 속에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창조를 기다리는 모든 피조물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태리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한국의 명화, 그리고 미국의 상업만화에서 차용한 캐릭터들. 그리고 착시효과로 시간을 느끼게하는 옵아트의 기법은 그의 화면안에서 온전한 하나의 메시지가 되었다. 그것은 관람하는 필자의 지각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신상현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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