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중일전쟁 발발…본국으로 소환된 김순호 선교사

[ 선교여성과 교회 ] 김순호 선교사 이야기 ⑥

정안덕 박사
2022년 08월 30일(화) 13:17
김순호의 중국 선교 동역자들이 고국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사진은 1937년 3월 산동으로 파송받은 방지일 부부와 딸 "선자" 세 식구(아래 중앙)와 만주로 파송받은 최혁주(하단 우측)가 총회 선교 위원들과 함께 찍은 것이다. 뒷줄 좌측부터 이영희, 김석항, 미상, 전도부장 이자익, 김재석, 이문주이며, 마침 안식년으로 고국에 머물던 김순호가 그 자리에 함께 하였다(하단 좌측)(중국 선교를 회고하며, 80-81).
1937년, 안식년의 한 해가 다 저물어 갔다. 그러나 김순호는 자신의 임지로 돌아갈 수 없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전면 발발하였고, 선교지 산동을 일본이 점령하는 위태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1936년 산동은, 20년간 사역한 방효원이 은퇴하고, 이듬해인 1937년 3월 그의 대를 이어 방지일(1911~2014)이 만주 선교사 최혁주(1905~1977)와 함께 총회 파송을 받아, 4월에 배편으로 대련을 우회하여 5월 7일 청도에 도착하니, 즉시 내양현 진입을 시도한다.

그러나 중화 대륙에는 전쟁의 총성이 울렸고, 그로 말미암아 산동의 조선선교부는 수난의 시기를 맞이한다. 예기치 못한 장벽에 가로막힌 김순호는, 일단 북만흑룡강성으로 올라가 목단강교회를 돕다가, 1938년 10월 17일에야 산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청도 사역과 본국 소환(1938-1939)

산 넘어 또 산, 어렵게 재개된 산동 사역, 김순호는 일단 청도시내에 거주하면서, 근교 즉묵을 내왕하였고, 그 전처럼 '도리반'에서 중국인 여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으며, 특별히 태평촌교회와 중가와교회 설립에 일조하였다.

그러던 중, 1939년 9월 12일 신의주제1교회에서 개최된 조선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연합대회는 '시국 정세의 긴박함'을 이유로 김순호의 본국 소환을 결의하였고, 김순호는 이에 순복한다. 이로써 1931년 9월 파송되어 1939년 9월까지, 만 여덟 해에 걸친 사역을 종결하고 조선으로 귀국함으로, 김순호의 산동 선교는 막을 내린다.

산동 선교에 온 힘을 다했고 매진했던 김순호에게는, 말이 '본국 소환'이지, 그 충격뿐 아니라 심적 부담과 고통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순교 여교역자'가 전언한 바에 의하면, 어느 날 밤 꿈에, 그가 섬겼던 중국인들을 보고는, 하도 그리워 실컷 울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고 하니, 주의 종이 되어 '뭇 사람을 공경하고자'했던 김순호에게 있어 중국 사람이란, 단지 선교나 사역의 '대상'이었기보다, 주 안의 한 '식구'요 '좋은 친구'였나 보다.

#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수학(1939)

1939년 본국 소환 후 김순호의 활동에 관해 '순교 여교역자'는, 그녀가 일본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에 '편입해' 신학을 더 공부한 것으로 기술한다. 그 기간 중 김순호는 공덕귀, 박용길 등과 함께 수학한 동창생이었고, 정신여학교 1년 선배인 함남 영흥 출신 김경순(1900~1950·함남 고원읍교회), 1939년 졸업생 신의주 출신 백인숙(1909~1950·평양 산정현교회), 1940년 졸업생 대구 출신 한의정(1898~1950, 평양 예수교회) 세 분 '순교자'와 그 신학교에서 함께 수학했거나, 친교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해 겨울, 여전도회연합회가 김순호를 '만주 선교사'로 파송하였고, 길림 쌍양현에서 최혁주를 도와 사역한 점으로 미루어, 그의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유학은 단지 수개월간의 '단기 연수'에 그쳤나 보다. 요코하마공립여자신학교 동창회 등이 주최한 '순교 여교역자 추모예배'가 소개한 다섯 분 순교자의 소개 내용 중, 위 세 분은 요코하마를 '졸업'으로, 김순호만 '수업'으로 명시한 점에서 그 가능성은 더 커 보인다.

정말 그랬다면, 곧이어 전개될 '만주 선교'라고 하는 미지의 새 사역을 앞두고, 없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짜내어, 비록 '단기'이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자 애쓴 선교사의 간절한 심정이 읽힌다.

정안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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