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 목양칼럼 ]

서경기 목사
2022년 08월 24일(수) 08:15
고등학생 때 예수님을 믿고 따른 후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은 적이 한순간도 없다고 고백한다. 역사를 공부한다고 사학과로 진학했다가 목회로 진로를 바꾸었고, 일반목회가 아닌 선교로 방향을 바꾸었다. 선교 영역에서도 산업선교로 시작해 이주노동자선교로 방향을 바꾸고, 다시 선교사로 캄보디아에서 사역하고, 귀국해서는 다시 이주노동자를 섬기고, 한아봉사회에서 선교를 지원하다가 지금은 일반목회를 하고 있다. 사역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어떤 대학에 진학하고 무슨 전공을 택할까를 고민할 때, 나는 일찍이 역사를 공부하려고 마음먹었고 무난하게 가고 싶은 대학 사학과에 진학하였다. 대학 1학년 때 휴학하고 시골 큰집에 내려가 3개월을 지내면서 그곳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서울 교회에 비해 너무 열악한 모습을 보았다. 시골교회에는 목회자가 없어서, 주일마다 큰 교회 전도사가 와서 설교하고 설교 후에는 바로 본교회로 돌아갔다. 예배 찬양은 축 늘어지고 중고등학생들이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역사가에서 목회자로 방향을 바꿨다. 내가 삶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시골교회를 보게 하셨다고 믿는다.

신학생일 때, 동기들 사이에는 '큰 목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내 마음 한구석에도 교회성장의 욕망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을 때, 예수님이 만나신 사람들, 즉 가난하고 병들고 귀신 들리고 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되었다. 이런 작은 자들이 지금은 어떤 사람들일까 고민하였는데, 그때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때마침 가까운 전도사님이 공단지역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 분의 영향과 안내로 산업선교훈련을 받아 영등포산업선교 간사로 산업선교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게 작은 자들을 보게 하시고, 산업선교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 믿는다.

이 사역이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즈음 갈릴리교회의 이주노동자선교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 역시도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이 사역은 내게 딱 들어맞아서 힘껏 사역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월급 받지 못하고, 병들고, 산재 당하여 교회로 찾아오면, 그들의 고통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업주를 찾아가 월급을 요구하였고, 이주노동자를 데리고 병원을 방문하여 치료받게 하였고, 근로공단에서 산재를 인정받게 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에 응하려면 밤과 휴일에도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4년을 지내니 예수님의 말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또 때마침 부르심을 받은 캄보디아 선교에,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제가 가겠습니다'고 응답하였다. 당시 아내는 교사였고, 작은 아이는 한 살도 되지 않았다. 상의없이 혼자 한 결정에 대해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그때, '제가 가겠습니다'고 결단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 믿는다. 선교를 마치고 귀국할 때도, 다시 이주노동자사역을 할 때도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인도하셨다.

한아봉사회로 부르신 일은 더 극적이었다. 이주노동자사역을 사임하고 쉬고 있을 때, 당시 한아봉사회 책임자로 계시던 박창빈 목사님께 몇 년 만에 인사하러 갔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 목사, 오늘 아침 서 목사를 생각하면서 기도했어. 막 전화 걸려고 했어. 나와 함께 일하지"

이 부르심에 응하여 한아봉사회에서 11년을 일하였다. 그리고 박 목사님이 강력하게 추천하시고, 영광교회와 원로 목사님의 부름으로 지금은 일반목회를 하고 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일꾼으로 충성하도록 늘 기도하고 있다.



서경기 목사 / 영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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