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 … 고작 MBTI에 위로받는 서글픈 MZ 들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8월 15일(월) 07:24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트렌드는 MBTI(마이어스 브릭스 유형 지표, Myers-Briggs Type Indicator)다.

지난해 말 한국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MBTI 관련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38%가 'MBTI를 잘 안다'고 말했는데 이 중 18~29세 응답자가 80%를 차지했다. 특히 20대 응답자 90%가 'MBTI 자료를 보거나 검사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50%가 MBTI를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별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신뢰도가 더 높았고 연령별로는 유일하게 18~29세에서만 신뢰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으면서 MZ세대의 MBTI 사랑이 증명된 셈이다.

MZ세대에게 MBTI는 이미 익숙한 문화다. 대부분의 학교가 MBTI를 활용해 진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유형이고 어떤 성격을 갖고 있으며, 또 어떤 직업이 어울리는지 가름할 수 있다. MZ세대들에게 MBTI는 일상이며 재미있는 놀이문화로 자리했다. 마치 과거 기성세대가 첫만남에서 "혈액형이 뭐에요?"라고 묻는게 당연했던 것처럼, 요즘 MZ세대들은 "MBTI가 뭐에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MBTI는 미국의 심리학자 캐서린 브릭스(Katherine Briggs)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 모녀가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Jung)의 성격유형 이론을 토대로 1944년 개발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다. 이들이 구분한 성격유형은 여러 문항을 통해 개인이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 등 4가지 지표 중 어떤 특성에 가까운지 파악해 분류하고 이 지표의 조합을 통해 총 16가지 유형으로 성격을 구분한다.

MBTI는 본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징병제로 발생한 인력 부족 및 총력전으로 인한 군수 공업의 수요 증가로 남성 노동자가 지배적이던 산업계에 여성이 진출하게 되자 이들이 자신의 성격 유형을 구별해서 각자 적합한 직무를 찾고 인간관계를 돕기 위해 개발됐다. 그러나 최근 MZ세대 중심으로 연애, 결혼, 직장 등 삶의 다양한 선택에 MBTI를 과도하게 맹신하거나 모든 것을 MBTI유형대로 해석하려는 'MBTI 과몰입' 현상이 심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CNN은 '제2차 세계대전의 성격 검사와 사랑에 빠진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MZ세대가 MBTI에 가장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국의 MZ세대는 데이트 상대를 찾을 때도 MBTI를 활용한다고 우려하며, "한국의 2030세대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알아가는 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MBTI를 통해 잘 맞는 사람을 골라 만난다"고 보도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 대학생은 "소개팅 하기 전 MBTI 유형을 알려주면 나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채용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구직자들의 성향 파악 등 면접 자료로 MBTI를 활용하거나, 아예 지원 할 수 없는 유형까지 명시하기도 한다. '외향형(E)인 분 많은 지원 바란다. ENTJ ESFJ인 분들은 지원 불가'라고 채용 대상을 한정하거나 입사지원 서류에 MBTI 결과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혹은 자기소개서 항목에 MBTI 유형을 밝히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장단점과 본인에게 적합한 직무를 적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벼운 놀이문화가 'MBTI 취업스펙'으로 확대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MBTI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 참고하고, 소소한 재미와 소통을 위한 놀이문화로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MBTI는 개발자가 전문적인 심리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과학적 방법론적 절차를 거친 다른 검사에 비해 정확성에서는 떨어진다. 자기 보고식 검사 형태로 당시 상황이나 기분 변화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완벽하게 신뢰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최근 화제가 되는 인터넷 약식 검사는 정확한 척도를 제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가 대부분이 이 검사를 이용해 오남용의 소지도 크다.

이토록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는 MBTI에 MZ세대는 왜 열광하는 것일까. 임주은 목사(문화선교연구원)는 "MBTI의 묘미는 결과를 타인에게 공유함으로써 자신을 알리고 확인받고 공감받는 과정에 있다"면서 "나 조차도 다 알 수 없었던 나의 감정들을 들여다볼 수 있고 나를 타인에게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는 이점이 MZ세대에 매력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MBTI 과몰입러'에 대해서는 "코로나19로 공동체 안에서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아야 하는 MZ세대들에게 이러한 고립 상황은 정체성을 찾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안겨줬다"면서 "불확실한 삶 속에서 MBTI는 적은 시간과 소소한 즐거움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준 것이다. MZ세대는 이 도구로 '나'를 찾고 이해하고 소통하고 일하고 즐기며 소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MBTI로 사람들을 판단과 편견에 가둘 위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임 목사는 "MBTI에 사용하는 네 가지 선호 지표도는 어디까지나 퍼센티지 값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성격유형도 정확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며 각 유형별 특성 하나를 갖고 한 사람의 전체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누군가를 잘 이해하기 위해 꺼내 든 도구를 편견이나 프레임을 씌우는 데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사실 MBTI는 교회에서 상당히 친숙한 문화이기도 하다. MBTI가 지금처럼 '열풍'을 일으키기 전부터 교회학교부터 청소년, 청장년 수련회에서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소명을 발견하기 위한 일환으로 MBTI 검사 프로그램이 심심치않게 진행됐다.

이러한 교회도 역시 MBTI열풍에 합류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MBTI 교회'라고 검색하면 △MBTI유형별 교회생활 △MBTI별 교회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전도사들끼리 MBTI하다가 싸운 썰 △은사발견 세미나 MBTI훈련 △돌아온 탕자의 MBTI유형은 △크리스찬이 MBTI를 사용하는 방법 △MBTI에 따라 교회 안가는 이유 등등 MBTI 유형별 기독교 콘텐츠가 무한하게 쏟아지고 있다.
정신실 소장(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은 'MBTI 현상,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CBS포럼에서 "교회 청년들이 MBTI에 열광하는 것은 교회가 청년들에게 '너는 충분히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체험으로 느끼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MZ세대들이 MBTI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데, 교회는 청년들에게 하나님이 고유한 존재로서 충분히 이들을 사랑하고 있고 각각의 모습대로 가치있게 창조됐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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