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신뢰성과 합리성은 과학이 담보하지 않는다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20. 무신론 시대의 성경론(4)

김도훈 교수
2022년 07월 22일(금) 16:30
지난 호에 이어 성경의 진리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믿을 수 있는가의 문제를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전혀 그런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하지 않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내용의 고귀함, 가르침의 효능, 문체의 장엄성, 모든 부분의 통일성, 성경 전체의 목표, 성경이 보여주는 인간의 구원에 관한 유일한 길의 온전한 제시, 그밖에 비교할 수도 없는 많은 탁월한 점들, 그리고 성경의 전체적 완전성, 이 모든 것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한다"(I, 5)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을 보는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이자 교회의 공식적인 고백이다. 여기에 성경이 과학적으로 완전하다던가 이성적 기준으로도 합리적이라는 언급 자체가 없다. 우리는 성경을 이성과 과학의 기준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과학을 입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책도 아니요, 역으로, 과학에 의해 입증되어야 합리성이 담보되는 책도 아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책이며, 과학으로 판단할 수 없는 하나님 이야기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은 스스로 증명하며, 스스로 자신을 해석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성경은 비과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거나 과학과 모순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진리는 과학적이자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적 관점을 넘어선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독일 신학자 불트만은 엄청나게 발전한 현대 과학문명의 시대에 성경의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기적과 부활의 사실성과 진실성을 부인하고 신앙이 만들어낸 사건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판단의 기준이 현대세계관, 현대과학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를 범하는 것은 앞에서 말한 신무신론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철저히 과학을 기준으로 사고한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신념은 과학에 합치되며 자신들과 다른 견해들은 무조건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치부한다. 세계관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과학적 증명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라고, 그러면 믿겠다고 떼를 쓴다. 과학을 종교로 삼는 자들이나 할 법한 주장이다. 그래서 맥그라스는 이들을 과학 맹신주의자, 과학적 교조주의자들이라 부른다. 한마디로 과학의 바벨탑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다. 모든 것을 과학적 이해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며 적합한 생각인가? 종교나 성경마저도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생각인가? 이성적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인가?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이성이 판단의 기준이라면 이성의 오류는 누가 판단할 것인가? 그리고 반문하고 싶다. 너희들의 과학은 과연 과학적인가고. 너희들의 과학은 유물론이나 무신론적 이념의 산물이 아닌가고.

성경은 사실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진실(진리)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성경은 사실성, 그것도 과학적 사실성과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반드시 과학적 증명이 필요한 책도 아니다. 성경의 신뢰성과 합리성을 과학이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증명 없이도 진리는 합리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밥을 먹었다"고 할 때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경험적 합리성이기 때문이다. "숲에 오니 건강해질 것 같다"는 말에 꼭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는다. 과학적 분석이 없으니 이 말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개인적 느낌과 판단이기 때문이다. 음식 맛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그것을 아무도 비과학적이거나 비이성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음악이나 미술을 감상하면서 과학을 들먹이지 않는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면서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면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도 없겠지만)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한 것인가? 우리는 또한 죽음 앞에서 과학 운운하지 않는다. 하물며 종교에 대한 이해는 어떠하겠는가. 성경은 또 어떤가. 그러므로 톰 라이트가 지적하듯,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만 보려는 사고는 이성만이 합리성의 기준이라는 "계몽주의적 신화"에 여전히 매몰되어 물들어 있는 사람이다. 자신들은 과학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신념의 작동이다. "과학은 대상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려고 그것을 분석하지만, 종교는 그 대상의 의미를 알기 위해 그것을 종합한다."(톰 라이트)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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