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에 남은 향기

[ 목양칼럼 ]

조의환 목사
2022년 07월 06일(수) 08:16
 차를 마시기 시작하며, 가장 매력적으로 내 마음에 와닿은 것은 차를 마신 뒤 찻잔에 남은 향기였다. 물론, 입안에 그리고 목 넘김에 남은 향기와 맛도 참 좋지만, 찻잔에 남은 향기가 그토록 달콤하고 향기로울 줄은 참으로 알지 못했다. 그래서 찻잔에 남은 향기를 맡으며, 빈 잔에 남은 향기처럼, 내가 떠난 뒤 남은 자리가 차향처럼 향기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기도의 제목이 되었다.

합창을 보면 멜로디를 맡고 있는 소프라노가 있고, 그 멜로디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알토와 테너와 베이스가 있다.
그 중에 소프라노와 테너는 그 높은 음역으로 인하여 듣는 이들의 시선을 끌지만, 알토와 베이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 정도로 화려하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 늘 주인공처럼 보이는 소프라노, 그리고 가끔씩 눈에 띄는 테너에 비하여, 알토나 베이스는 조연으로 만족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는 소프라노 같은 분, 테너 같은 분, 알토와 베이스 같은 분이 있다. 화려하게 앞장서서 일하기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묵묵히 아름답고 조화로운 교회와 사역이 되도록 힘쓰는 분들도 많이 있어 교회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알토와 베이스 같은 이들은, 그 분들이 그 자리에서 떠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계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였는지를 ….
교인들의 장례식장을 방문하게 되면, 고인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한 곳이 있다.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헌신하여 오신 미담이 가득한 것이다. 이런 분들의 장례식은 떠나심의 아쉬움으로 눈물을 흘리게 되고, 설교 역시 고인의 지난 세월의 간증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 떠난 뒤, 오히려 더 크게 고인의 사랑과 헌신의 무게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경우들이 늘어난다. 기쁘고 즐거우며 자랑스러운 일들도 간혹 있지만, 아쉬운 일들과 부끄러운 일들 그리고 후회되는 일들도 참 많다. '그 때 조금만 더 정신차리고 공부했다면 …', '좀 더 일찍이 기도를 배우고 알아 주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더 풍성하게 하였더라면 …'.

이러한 후회를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천성적으로 집중하여 열심으로 무언가를 하는 체질이 아니다. 무엇이든 적당히 하다가 힘들면 그만 둔다. 그래서 피아노도 배우다 말았고, 기타도 그저 적당할 정도로 치고, 첼로도 배우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고, 운동도 테니스, 베드민턴, 축구, 배구 등을 전전하다가 요즘은 자전거로 귀착했는데 그것도 속도를 즐기는 로드자전거도 아니고, 산을 타는 MTB 자전거로 산을 타기 보다는 도로를 적당히 내 체력에 맞추어 타고 있다. 그러니 뭐 남들 앞에 내세울만한 실력이나 성취나 열매가 없다. 그렇다 보니, 치열하게 열정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든다.

오늘도 차를 마시고 찻잔에 남은 향기를 맡으며, 무엇 하나 뜨거운 열정 없이 적당히 살아온 나로선, 떠난 자리가 찻잔에 남은 향기처럼 아름답길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저 떠난 뒤 분뇨냄새나 나지 않으면 그로 족하다.


조의환 목사 / 김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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