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노니아, 예수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것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15. 위기 시대의 코이노니아 교회론(3)

김도훈 교수
2022년 06월 17일(금) 08:30
코이노니아를 단순히 성도들 간의 사귐으로만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교제, 그리스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로 우리와 사귐(코이노니아)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1:3)라는 구절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코이노니아)" (고전 1:9)를 언급한 구절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코이노니아, 즉 예수 그리스도에 참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코이노니아)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코이노니아)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전10:16~17). 바울에 의하면 코이노니아는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에 참여하여 그와 사귐을 갖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성령의 사건이다. 우리가 성찬에서 성령의 임재를 기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며, 우리를 서로 하나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둘째, 주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일으키는 성찬은 과거를 현재화하는 회상적인 사건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선취적 사건을 의미한다. 몰트만의 말대로, 그 식사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 앞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의 식사로서 그것은 오고 있는 그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며, "독특한 방식으로 과거와 미래, 역사와 종말론을 결합하고 해방하는 은혜의 표징이 된다." 따라서 성찬 참여자들은 "이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회상하고", "부활하신 자의 현재(현존)를 인식하고", "영광 속에서의 그의 나라의 도래를 기쁨으로 희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코이노니아 공동체는 "자유로운 감사를 통하여 해방하는 은혜에 응답"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에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그리고 분쟁과 나뉨으로 고통당한다면 코이노니아의 의미를 담아 성찬을 시행해 볼 것을 권한다.

셋째,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앞에서는 성찬을 통한 참여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 성찬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참여하는 코이노니아의 삶이어야 한다. 바울의 말을 인용해 본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코이노니아)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10~11). 이 본문에서 바울은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죽음과 부활을 비롯한 그의 생애의 모든 사건을 그와 함께 나눈다" (WBC, 빌립보서, 288)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부활해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부활한 생명의 능력 안에서 살고 있다"(WBC, 289)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의도는 단지 현재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적 종말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모든 불법이 영원히 바로 잡히게 될 미래의 부활에 대한 소망"(WBC, 289)도 아울러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소망이며, 그리스도의 위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다."(벧전4:13).

현재의 교회는 도상의 존재다. 완성된 영광의 상태에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공동체다. 순례의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를 위한 십자가는 당연한 실존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비켜가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교회됨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에 있다.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고통이라기보다 오히려 기쁨이요 감사이다. 이것이 바로 코이노니아 교회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것을 기뻐할 일이다. 고난은 결코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와의 코이노니아를 가능케 하시는 이는 성령이라는 점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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