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물

[ 목양칼럼 ]

이호 목사
2022년 06월 15일(수) 08:06
사람이나 동물이나 음식을 먹으면 소화되고 난 나머지 음식은 반드시 찌꺼기 형태로 몸 밖으로 배출된다. 그렇게 맛있고, 영양가도 높고, 요즘은 '눈으로 먹는다'라고 할 정도로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 좋은 음식이라도 일단 몸 안에 들어왔다 몸 밖으로 나오면 들어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어 나온다. 소화가 되지 않은 음식물은 그 이전의 형태도 찾아볼 수 없고 냄새의 역함은 글로 쓰기에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동물학자 이배근에 의하면 '창세기 이래 모든 똥 중에서 최상위 포식자의 똥이 가장 더럽고 구리다'고 한다.

요즘은 개의 위상이 높아졌다. 개를 개라고 부르면 좀 무식하다는 눈치를 받는다. 반려견이라고 해야 교양인 대접을 받는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반려견의 변을 밟은 일이 있다. 그런데 이 개똥의 구린내는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문득 반려견이 무엇을 먹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사슴앞다리, 양갈비구이, 연어, 야채고기죽 이외에도 정말 많았다. 개는 인간에게 꼬리를 흔들고 인간에게 안겨서 최상위 포식자의 똥을 누고 있다. 물론 개라도 다 그렇지는 않다.

인간이 자연계의 최상위 포식자라고 하지만 인간에 속하는 자들의 배설물의 가치가 다 똑같지는 않다. 잘 먹고 잘사는 권세 높은 자들의 똥은 하위 계급의 똥보다도 훨씬 더 기름지고 건더기가 많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김훈의 산문 '연필로 쓰기'를 보면 일본인들도 오랫동안 인간의 똥을 거름으로 사용하며 비료로 시장에서 거래를 하였다. 메이지 유신이 한창 전개되던 1878년에 일본 정부가 제정한 '분뇨 취급규칙'은 전국의 똥의 가치를 5등급으로 분류해서 값을 매겼다고 한다. 대(다이묘)저택에서 나오는 똥이 최상품으로 값이 가장 비쌌고, 공중변소의 똥이 상등품, 일반 가정의 똥은 중등품, 출처와 관계없이 오줌이나 물이 많이 섞인 똥은 하등품, 감옥이나 유치장에서 나온 똥은 최하등품으로 값이 가장 쌌다고 한다. 메이지의 관료들은 똥도 그 효능에 따라 분류하고 값을 차이 나게 매겨서 시장의 원리에 편입시킨 것이다.

고대 히브리인들도 배설물 관리는 중요한 문제였다. 특별히 전쟁의 승패는 진영의 거룩 여부에 달려 있기에 진영을 거룩하게 하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만 했다. 대변을 볼 때는 진영 밖에 나가서 땅을 파서 일을 보고 흙으로 덮어야만 했다(신23:13). 하나님께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도록 배설물 관리를 규정(신23:14) 하고 있다. 이는 공중위생이라는 것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유지하도록 한 조치였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이외의 모든 전통이나 가치를 다 배설물로 여겼다(빌3:8).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많은 좋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제로(zero)'인 가운데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하나(one)'이시다. '가장 고상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이 존귀하다. 비교 불가한 예수님을 바라보면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될 때 그가 배설물 중의 하나로 여겼던 로마 시민권이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신비한 은총이다.



이호 목사 / 종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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