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잔치

[ 가정예배 ] 2022년 6월 13일 드리는 가정예배

조성광 목사
2022년 06월 13일(월) 00:10
조성광 목사
▶본문 : 누가복음 15장 20~24절

▶찬송 : 309장



외로움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는 징표이다. 소외는 누군가와의 따뜻한 교제를 원한다는 징표이다. 두려움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징표이다.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 가운데 우리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와의 따뜻한 사귐을 갈망한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안아주고 위로하며, 인정받고 인정하며, 격려받고 격려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오늘 본문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먼저 받아 먼 나라로 떠나버린 아들이 나온다. 아버지를 떠나버린 아들! 아버지로부터 돌아선 아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죄는 곧 우리의 상태를 의미한다. '죄들'이 아닌 '죄'의 현대적 의미를 폴 틸리히는 '분리'로 해석한다. 근본으로부터 분리된 삶 속에서 소외와 두려움, 곤란과 고통이 찾아온다.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챙겨 떠난 아들은 결국 그 모든 것을 탕진하고 가난에 허덕인다. 그를 안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잃어버린다. 극심한 소외감에 몸서리친다. 문득 아버지가 떠오르지만, 차마 아버지께 돌아갈 용기가 안 난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 아버지의 집에 가 종으로라도 빌붙어 살자는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긴다.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가 달려와 아들을 안아주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발에 신을 신겨 준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여준다. 아들은 몸 둘 바를 모르지만, 아버지는 큰 기쁨으로 환대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라 말하며, 큰 잔치를 벌이려 한다.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돌아온 것이 중요했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아들을 꼭 안아준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다. 여기에 은혜가 있다. 폴 틸리히는 은혜의 현대적 의미를 재결합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께 안기는 것이 은혜이다.

아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안아줌으로 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아버지에게 돌아오고서야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베풀어준 잔치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는 큰 잔치였다. 큰 잔치는 큰 기쁨이 되었다. 세상은 아들에게서 기쁨을 빼앗고, 그 마음을 좁아지게 하지만, 아버지는 기쁨의 잔치로 아들의 마음을 넓혀 준다. 기쁨의 잔치는 아들이 세상에서 겪었던 한계를 극복하게 해 줄 것이다.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서야 아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하고 있다. 아버지는 큰 기쁨으로 우리를 안아주신다. 아버지의 품에 안긴 우리가 서로서로를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으로 품어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으로 서로를 기뻐하며 서로 축복하자. 아버지의 사랑과 기쁨으로 우리와 우리 공동체의 한계는 극복될 것이다.



오늘의기도

하나님의 기쁨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기쁨으로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성광 목사/구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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