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와 자존감

[ 인문학산책 ] 60

임채광 교수
2022년 06월 08일(수) 09:14
독일의 근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존재이다. 그 가치를 발견하고 만들어가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리처드 바커의 '갈매기 꿈'에서 주인공 갈매기인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이 먹이를 위해 비행하는 것과 달리 비행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 대해 "뼈와 깃털만 남아 있어도 상관없어요. 어머니 저는 단지 창공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라고 외친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그의 어머니조차 알 수 없었던 자존감의 소유자였다. 자존감은 표면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으로 보여지지만 그 출발점은 남다른 의무감과 실천능력에서 비롯된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인간의 가장 고결하고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책임'에 있다고 간주 되었다. 자유는 곧 인간의 이성 안에 있는 '입법권'의 원리이자 인륜적 가치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일이다. '의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하도록 구속되어있는 행위를 말하며 존엄성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의무'에는 당위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 방향은 나 자신에게 향한다. 칸트(Immanuel Kant)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의 핵심이 자기를 완전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목적에 부합하는 행위를 마땅히 해야 함을 말한다. 즉, 이성의 본성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며, 인간으로서의 내가 나 자신에게 부가하는 의무이다. "이성적 존재자가 목적들의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입법하되 또한 이 법칙에 스스로 복종하는 경우에 그는 한 구성원으로서 그 나라에 속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입법자로서 다른 어떤 존재자의 의지에도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두머리로서 그 나라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내가 스스로 정립하는 행위의 준칙을 보편법칙으로 만들고 그 법칙에 따라 행위 할 때에만 의무에 합치되는 행위가 가능하다. 따라서 복종하는 법칙이란 바로 내가 나 자신에게 부과한 법칙이다. 자기가 정립한 법칙에 자기 자신이 복종하는 것이 '자율'이다. '자율성'은 성숙된 인간의 기준이 된다. '자율성'은 '스스로 부여한 준칙에 따른 삶'이다. 그 기능과 양태에 따라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생명체로서의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무이다. 인간으로서 자신의 몸과 건강을 유지하고 자연적 충동과 욕구를 보존하고, 육신의 생기를 유지 보존해야 하고자 하는 분별력이다. 해로운 음식을 멀리하고 건강을 보존하기 위한 건강관리에 매진하는 것이 이와 같은 의무의식 때문이다. 둘째,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의지이다. 본성에 상응하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현실 생활에 접목시키려는 의지는 의무감으로 다가온다.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의지도 일종의 의무감이다. 셋째, 도덕적 존재자로서 지켜야하는 자신의 품격에 대한 의무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 칸트는 자기 존엄성을 해치거나 부정하는 일은 자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짓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무엇보다도 인간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도덕적 측면에서 볼 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한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인격에 대한 존귀함을 해치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버리고 파괴하는 것"이다.

모든 의무는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자신에 대한 의무는 종교적 의무로 주어진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도덕적 법칙은 실천이성을 통해 작동한다. 그리고 실천이성은 필연적으로 '최고선'을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영혼 불멸과 신의 현존을 요청한다. 신 존재 요청은 도덕법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최고선을 실현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결합되어 신앙, 일종의 '순수 이성신앙'이 된다.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난, 자기 자신을 위한 의무감은 순수한 자율성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실천력이 내포되어 있다. 진실된 의무감은 실천 의지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고선의 기초를 놓은 최고 존재자의 명령으로 느끼는 마음과 유사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품격과 자존감은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스스로 부여한 규율과 의무감에 순응하는 데에서 나온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