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고종(高宗)이 헤론에게 내린 교지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05월 30일(월) 10:02
고종(高宗)이 헤론에게 내린 교지, 1886년, 74x111cm,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소장.
'미국인 의사 혜론은 의술이 뛰어나며, 많은 사람들을 잘 치료했다. 이에 특별히 당상관의 벼슬을 더해, 통정대부에 임명함으로 그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병술(1886)년 5월 12일'

헤론(John W. Heron, 1856~1890)은 1885년 6월에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했다. 그는 우수한 실력으로 모교인 테네시의과대학의 교수 제안을 받았지만, 그리스도를 전하려는 열망으로 이 땅을 밟았다. 헤론은 고종이 세운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하는 동시에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부지런히 찾았다. 그 결과 짧은 기간 동안 의료사역 뿐 아니라 전도, 고아원 및 학교 운영, 성서 번역에도 기여한다.

이 유물은 1886년 봄, 헤론이 고종에게서 받은 교지(敎旨)다. 그는 정3품 당상관의 고위벼슬인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교지를 받았는데, 그의 기억은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 총무였던 엘린우드 박사에게 쓴 편지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것(교지)은 폭이 약 75센티미터, 높이가 90센티미터인 두꺼운 종이 위에 커다란 한문을 적은 것인데, 왕의 직인이 찍혀있었습니다. 그들의 관습에 따라 궁궐의 시종이 가져왔는데, 그것을 증정하면서 모두들 제 앞에서 허리를 낮게 굽혔으며, 나는 이것을 왕이 주는 선물로 여겼습니다.'

교지는 오른쪽 위에 교지라는 제목을 시작으로 왕의 명령과 일시가 내려쓰기(좌종서)로 적혀있고, 일시를 쓴 글자 위에는 국새인 '유서지보 (諭書之寶)'가 찍혀있다. 거북이 모양 금 손잡이의 이 도장은 고종 13년(1876)에 제작돼 대한제국의 국새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행정용 직인으로 쓰였다. 헤론은 승정원의 승지와 관원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왕의 교지와 함께 하사한 관직을 자신의 의료사업에 대한 왕의 감사 표시라고 생각했다.

이후 1887년 10월 알렌이 미국으로 돌아가자 그는 제중원의 책임을 맡은 고종의 어의로 임명됐고 1888년에는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90년 7월 26일, 한국에 온지 5년 만에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한국인 여성을 치료하다가 이질에 전염되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은 양화진에 외국인의 묘지가 생기게 했고, 헤론은 그곳에 묻힌 첫 번째 선교사가 됐다.

그의 묘비에는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이 한문으로 새겨졌다.

신상현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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