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인간에게 무엇일까?

[ 인문학산책 ] 58

임채광 교수
2022년 05월 26일(목) 11:00

독일의 생명 윤리학자 한스 요나스.

TV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다. 두 연예인이 번갈아 가며 산이나 섬과 같은 외딴곳에 기거하는 주인공을 찾아가 2~3일 동안 함께하며 낯선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2020년 8월 기준으로 이 프로그램은 21개 유선 TV-채널에서 방송되었고, 편성표 기준으로 모두 주 55회가 방영되었다고 한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해도 주 55시간이 된다. '나는 자연인이다' 인기의 비결이 무엇일까? 인간과 자연의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에 대해 이해하는 일은 인간에 대한 주제만큼이나 쉽지 않다. 오래전부터 자연은 '두려움이자 극복의 대상'이었고, '분석과 활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자연을 신비롭고 알 수 없는 미지의 대상으로 간주하였던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자연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라고 보았다.

오랜 세월 자연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의식주의 해결, 곧 자연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이자 신비롭고 두려운 대상이었다. 때로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인간이 삶과 죽음, 생존을 위한 투쟁과 같은 기본적 욕구와 충동을 해결하기 위해 신을 만들었다고 보았다. "종교는 인간에게 인간 자신의 본질을 인간과는 다른 본질로 드러나도록 하고, 그 토대 위에 모든 종교적 구원과 행복의 원천인 은총으로부터 죄인인 인간을 소외시키거나, 증오하거나 또는 저주하는 행태를 통해 인격적 본질과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도록 한다. 즉, 인간은 종교 안에서 자기의 잠재된 본질을 대상화한다."

두려운 존재였던 자연을 분석과 이용의 대상으로 전환 시킨 공로는 과학의 발달에서 있었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산업혁명은 자연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인간의 완전한 승리를 말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확인했듯이 자연은 아직도 종종 무섭고 두려운 대상으로 돌변한다.

이제 우리가 자연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것들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해석해 내는 일은 학문의 가장 큰 관심 사항이기도 하였다. 일등공신인 과학의 눈부신 활약은 자연에 대한 기본 관념을 변화시켰다. 이젠 중립적 대상이 된 자연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히려 존재의 가치는 인간에 의해서 부여된다. 자연과학과 자본주의의 콜라보로 인해 자연의 파괴는 극단적 효율성을 만들어 냈다.

기술발달과 인구의 증가는 도시화를 부추겼고, 현대인은 소위 '자연결핍'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극복이 안락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으나 새로운 형태의 병원체들이 삶과 미래를 불안케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자연은 마치 행복의 준거이자 마치 망각된 파라다이스와 같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연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이요, 선이자 최상의 가치이다. 자연은 실제로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낙원일까?

'나는 자연인이다'에 대한 관심은 이와 같은 정서를 대변한다. 자연에 열광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 성장한 경우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절대적 결핍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익숙함에 대한 끌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설혹 어린 시절의 익숙함을 찾아 귀향하더라도 문명 생활을 완전히 포기한 삶을 장기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맹목적 자연주의자의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그렇지만 자연과의 공존과 배려는 중요하다.

요나스(Hans Jonas)에 따르면 인간됨의 가치는 "책임을 아는 유일한 존재"이며, 우리는 "미래세대의 존립과 삶의 질"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로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한 '책임의 원칙'이 곧 인간에겐 정언명령이라고 강조하고, "① 인간적 삶의 지속과 조화가 되도록 행위하라 ② 인간 생명의 미래에 파괴적이지 않도록 행위하라"라고 요구한다.

생태계의 위기와 인류의 종말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는 자연과 인간의 화해와 공존의 필요성이다. 이를 위한 원칙들을 정리해본다. 첫째, 자연에 대해 판단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지나치게 맹신해 선 안된다. 둘째, 인간과 자연은 하나의 유기체이자 일종의 운명공동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분명한 점은 미래사회에 우리는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만 하고 그렇게 될 것이다. 이에 인간은 좀 더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키워드는 자연에 대한 배려와 공존이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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