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익명 아닌 익명성의 장

[ 뉴미디어이렇게 ]

이종록 교수
2022년 05월 17일(화) 11:09
아이디는 자신을 인증하는 도구인 동시에 익명성을 보장하는 특이한 기능을 가진다.
디지털 시대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익명성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이디라는 것이 참 모호하고 때론 괴상하기조차 하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아이디(ID:identification)'는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용자를 정확히 인증하는 기능을 갖는다. 본명이 아닌 별칭이라는 점이 자신을 감출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하는 일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맘을 갖게 하는, 이중적이고 상충되는 역할을 한다.

왜 인터넷 사이트들이 본명이 아닌 아이디를 사용하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디는 드러내면서도 감추고 싶어 하는 인간적 본성을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표출되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원래 이름을 써야 한다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아이디라는 별칭으로는 과감하게 시도하고, 때론 자신이 의도치 않는 무자비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갖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악성 댓글 때문에 상처받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사람을 파멸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런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특별히 잔인해서 그럴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디지털 시대가 강요하는 이중적이고 모호한 자기 정체성이 부정적인 인간 본능을 무분별하게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악한 본성을 억제 하려는 문화적인 측면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익명 아닌 실명으로 행하는 익명성이다. 분명히 실명을 알고 상대방을 아는데도 자신이 책임지지 않을 영역에서는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지만, 막상 자신이 책임져야 할 영역에서는 자신을 감춘다. 국가적, 세계적 이슈에 대해서는 신랄하면서도, 자신이 속한 특정한 공동체 문제에는 침묵하는 것, 이게 익명 아닌 익명성이 아닐까.

이종록 교수/한일장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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