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은퇴

[ 목양칼럼 ]

정복돌 목사
2022년 05월 18일(수) 08:23
목회는 늘 준비하는 생활이었다. 미리 준비해야 했다.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서 교회에서 실행에 옮겨야 했었다. 한 가지 일을 하면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여야 했었다. 잘 하는 목회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나름 늘 준비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몇 해 전에 깜짝 놀랐다. 어떤 일을 생각하며 '이것은 다음에 해야지'라고 생각을 하고서 정리를 하는 중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은퇴'였다. '은퇴를 준비해야지 무슨 다음 목회냐' 하는 생각이었다. 다음 목회를 준비할 것이 아니었다. 은퇴를 준비해야 했었다.

은퇴 준비는 10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삶이 된다고 한다. 은퇴는 모든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의 최전선에서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노동이 되기 때문에 은퇴한 자가 새로운 노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퇴 준비는 10년전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해 전에 은퇴에 관한 몇 권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내가 은퇴를 준비한다?' 그렇다. 내가 은퇴를 준비해야 한다. 다음 목회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를 준비해야 했다. 엄연한 현실이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년의 준비가 아니라 불과 몇 년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고민도 해 본다. 딱히 묘안이 없다. 흔히 노년이 되면 있어야 할 것이 두 가지라고들 한다. 건강과 돈이라고 한다. 누구나 건강은 필요하겠지만 더구나 늙어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 몸을 자기가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물질이 적당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추하지 않게 된단다. 내가 대접을 받으면 나도 어느 정도는 대접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무엇을 준비할까? 먼저 포기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짊어지고 있던 목회의 모든 짐을 내려놓는 일이다. 내가 은퇴한 다음의 일은 후임 목회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후임 목회자를 믿지 못해서 1~2년간 동역하고자 하는 담임목사도 있다. 가르치고자 하는 이도 있다. 모두 과욕이라고 본다. 은퇴목사가 처신을 잘못하므로 교회가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따라서 은퇴 후에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음을 마음에 새기자.

오래전 어떤 목회자의 글에 원로목사가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수석 부목사처럼 처신하라고 하는 글을 읽어 본적도 있다. 후임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원로목사는 큰 부담이다. 원로목사는 잘 대우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이제 내가 부담이 되는 은퇴목사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덕이 되는 목회자는 못되어도 짐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처신을 잘하는 은퇴목사가 되어야 하겠다. 은퇴 후에 교회에 덕을 끼치지는 못할지라도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은퇴 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마음에 새기자. 내가 한 걸음 물러서 있어야 후임 목회자가 제 역량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포기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정복돌 목사 / 대구 평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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