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물학적 결핍존재이다

[ 인문학산책 ] 56

임채광 교수
2022년 05월 11일(수) 06:12
독일의 문화철학자 아놀드 게엘렌.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해 인간의 결핍성을 존재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최초의 철학자였다.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만물은 각각 그것들의 이데아가 존재하며, 인간만이 이성을 통하여 자신의 본질을 회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삶이 형통하지 않고 고통과 불의, 또는 추악한 현실에 놓이게 되는 이유가 이데아의 결핍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들은 궁극적으로 이데아의 모사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결핍성을 구체화한 또 다른 사례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음으로 다른 만물에 비해 구별되는 특수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지만 에덴동산에서 저지른 죄악으로 인하여 죄성을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게 되었다. 원죄를 갖고 세상에 나온 개인은 신앙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받는다. 존재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죄는 결핍성에서 유래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 유일한 완전자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적 결핍성으로 인해 인위적 판단과 자발적 행위는 불신앙의 시작이자 죄의 출발점이다.

19세기 이후 인간학자들은 특히 인간의 몸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다윈과 프로이드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게엘렌(Arnold Gehlen, 1904~1976)은 1940년에 발행한 그의 주저 '인간: 세계 내 그의 천성과 지위'에서 경험 과학적 자료를 동원하여 "형태-생물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볼 때 "생물학적 결핍존재"라고 규정한다. 특히 다른 동물과의 비교 속에서 인간존재의 생물학적 특수성을 밝혀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러한 맥락 아래 인간은 동물의 신체적 전문성 및 생존에 유리한 신체구조의 완벽성과 대비되는 특징을 보여준다.

"결핍성"은 게엘렌의 문화인간학에 함축적 의미를 가진다. 결핍존재라는 개념은 최초에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가 인간을 결핍된 자연 존재라고 보았던데에서 유래한다. 단 헤르더가 결핍성 개념을 생존의 기본 전제가 되는 언어 행위의 원시적 원리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반면, 게엘렌은 인간을 기술, 제도적 행위의 틀 안에서 생존양식을 구축한다고 보았다. 헤르더가 인간이란 종자체의 특징을 '헛점'와 '결핍'의 동물로 전제하듯 게엘렌 역시 인간을 그 형태나 생물학적 구조 자체를 볼 때 생존에 부적격한 존재로 규정되어 태어난다고 머리모양에서 포착한다. 특히 두형은 다른 고등동물과 비교해 볼 때 확연히 생존에 불리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거친 자연에 적응하기에 부적당한 치아와 턱 구조가 그 한 예이다.

둘째, 늦은 성장속도. 생물학자 볼크(Louis Bolk)에 의하면 인간은 여타 다른 고등 동물에 비해 성장이 지연되는 경향이 있음을 장기간의 연구결과에서 보여주고 있다. 가령 동물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성장하는 데 인간에 비해 현격히 적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볼크의 "지연법칙"에 의하면 돼지와 소, 말과 인간이 각각 평균 2Kg, 40kg, 45kg, 3,5Kg으로 태어나서 몸무게가 2배로 성장하는데 14, 47, 60, 180일이 필요하듯 동물과 달리 오랜 임신기와 긴 신체적 성장기를 보낸다는 것이다.

셋째, 선천적 충동구조의 생리적 불안정과 '부담'. '욕구의 무차별적 과잉현상'과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충동구조의 불안정성이 그 요인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지는 충동구조와 신체적 장치가 빈약함으로 인하여, 세계 경험과 내면화 과정이 없이는 행위의 정향성 자체를 취득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규정한다. 즉, 인간에게는 세계의 경험과 내면화된 의미를 실행하는데 있어서 주변환경에 적합한 충동구조를 보유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게엘렌 주목한 인간의 결핍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인간이 여타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육체적 결함으로 인해 생존에 불리하게 태어난다는 점, 두 번째는 스스로 생존하기까지 남달리 긴 성장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한 행위 시 충동구조의 불안전함은 자발적 판단에 부담의 생리 상태를 갖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생물학적 결핍존재라는 개념은 게엘렌의 사회, 문화 이론에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결핍성의 보완과 대체는 생존을 위한 행위 및 사회적 삶의 계기이자 촉발제가 되기 때문이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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