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영성은 건강한 기도로

[ 주간논단 ]

유해룡 목사
2022년 05월 03일(화) 07:46
내면을 드러내는데 기도만큼 정직한 수단은 없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드려진 것이라면 기도 안에서 의도적으로 거짓을 쏟아내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스로 자신의 기도를 진지하게 성찰한다면, 자신의 영적 삶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한 사람의 정신적 건강은 그 사람의 기도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많이 알려진 그의 한 기도문으로부터 니버의 기도의 의미와 태도를 추론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이여,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의 기도는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변화시키려 하고, 변화시켜야 할 것들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속에서 강력한 기도가 일어나곤 한다. 어린 시절 부흥집회에서 자주 들었던 부흥강사의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늘 보좌를 움직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도 간절한 부르짖음에는 어찌할 수 없이 뜻을 돌이킨다는 의미이다. 그런 가르침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닌 듯하다. 힘겨운 시절에 그러한 말씀이 큰 위로와 용기를 주곤 하였기 때문이다. 기도해야만 하는 동기가 분명해졌고, 그 기도의 힘으로 어려운 세월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해 가면서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인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인가?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일인가? 나를 변화시키는 일인가?

기도의 목표에 따라서 그 답도 달라진다. 통념적인 기도의 목표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워주는 데에 있다. 따라서 기도의 효험을 입증하려면 그 결과로 말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움직이셨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도가 대화라고 한다면, 그 목표는 주님과의 사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주님과의 사귐을 목표로 하는 기도라면,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 사귐은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 친밀한 사귐이란 싱대방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내 자신을 바꾸려는 것이 더 지혜로운 처사가 아니겠는가?

요즈음 교회지도자들은 부르짖음의 기도소리가 잦아든다고 걱정을 한다. 잦아드는 부르짖음이 기도가 멈춰진 증거라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피상적인 종교생활이든지, 윤리적 행위에 영향을 주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부르짖음이 없는 현상을 기도방식의 변화 징조로 받아들인다면, 걱정보다는 기도의 새로운 목표를 세워줄 때다. 기도에 대한 열심을 독려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기도생활에 대한 가르침도 함께 따라주어야 한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실용주의적인 차원의 능력 있는 기도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건강한 기도에 관심을 기울어야 할 때다.

지난 세월 한국교회는 기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한 관성적 습관 위에다가 건강한 기도 생활을 세워준다면, 영적으로 쇠퇴해가는 듯한 현실교회가 한 단계 영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좋은 기도란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과정에서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이룰 수 있는 기도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찾아야 하고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종교적 본능에 기반을 둔 부르짖음으로는 성숙한 영적생활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한 영성생활은 건강한 기도로부터 비롯된다.



유해룡 목사 / 모새골공동체교회·장신대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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