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 없는 연합

[ 이슈앤이슈 ]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2022년 04월 19일(화) 10:01
'연합기관', '연합사업' 등 '연합'이라는 단어가 한국교회에선 익숙하다. 작게는 중대형 교회에 국한된 이야기긴 하지만 연령대별로 구분되어 있는 각종 남.녀선교회의 연합부터 시작해서, 지역 사회에서의 교회 연합, 한국교회 교단들이 연합하는 연합기관과 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연합사업까지 교회 곳곳에서 '연합'이 강조되고 있다.

'둘 이상의 사람이나 집단이 합하여 하나의 조직체를 만든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연합은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것이다. 이 '연합'의 뜻을 생각하면서 한국교회에서 회자되는 '연합'을 끼워 맞춘다면 이미 한국교회는 하나가 되는 연합정신인 '함께'의 모범이 되어 있어야 맞다. 말끝마다 '연합'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분열의 상징과 같이 이야기되고 있을까? 결론적으로 연합에 대한 거창한 구호는 있는데, 실천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교회에서 모범이 되는 연합을 꼽는다면 통일된 '성경'과, '찬송가' 사용일 것이다. 번역된 성경을 강단에서 사용하는 문제를 놓고 교단의 성격에 따라 채택 여부를 놓고 때론 줄다리기를 하곤 했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강단용 성경으로 대부분 하나의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 찬송가 또한 1960년대 초에 통일해서 사용하던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외형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 연합의 모범적인 사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또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역사적으로 적지 않은 불협화음이 있음을 필자는 취재 현장에서 경험해 왔다. 성경의 경우 새롭게 번역된 성경을 놓고 교단 간에 신경전을 벌리면서 별도의 성경을 제작한 일도 있었다. 이로 인해 법정 싸움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찬송가의 경우는 더 심해서 이럴 바엔 교단별로 각각 찬송가를 제작해서 사용하자는 볼멘소리가 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교단이 다르더라도 함께 모여 읽는 성경과 함께 부르는 찬송가는 통일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 전통이 깨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익권을 앞세운 교단간의 경쟁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연합정신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막적으로는 분열을 조장하는 모습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매년 열리는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를 생각해 봐야 한다. 부활절연합예배는 대표적인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를 아무르는 연합행사로 자리잡아 왔다. 최소한 여의도 광장에서 열리던 1990년도 초반까지는 그랬다.

부활절연합예배의 시작은 해방 직후인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남산공원에서 주한미군과 합동으로 드리기 시작한 것이 부활절연합예배의 출발이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로, 즉 NCC 계열과 비NCC계열로 나누어진 한국교회는 부활절연합예배 마저 각각 드리다가 '하나됨'의 여론이 확산되면서 1973년에 부활절연합예배준비위원회가 조직되고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한국교회 연합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 위원회는 부활절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위원회로 행사가 끝나면 해산됐다.

진보 보수를 아우르는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회장과 설교자를 양측이 번갈아 가면서 맡으면서 연합의 맥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회차가 거듭되면서 부활절이 다가오면 모여드는 연합사업꾼(?)들이 생겨났고, 사욕을 챙기는 일종의 연합예배 사업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부활절 새벽에 한국교회가 한자리에 모여 부활을 선포하던 정신은 오고 간데없고, 어떻게 많은 인원을 동원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면서 흐지부지한 채로 당분간 흘려왔다. 예배도 새벽이 아닌 다른 시간대로 옮겨졌다.

그리고 현재 부활절연합예배는 외형적으로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한국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정신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이미 보수와 진보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가 부활절 새벽에 한자리에 모여 예배하는 부활절연합예배 정신을 현재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대회장을 맡고, 누가 설교를 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려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따라 이날 모이는 집회 인원과 헌금이 좌우되기도 하며, 순서자가 부담하는 분담금 크기에도 관심이 쏠린다.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교회의 화두 중심에 있는 연합정신은 이어가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예수님의 몸은 하나이지 않는가.

아울러 순수함이 없는 연합사업(기관)은 더 이상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눈앞에 놓여진 과제이다. 연합을 이끌기 위한 지도자는 필요하지만, 연합을 통해 한 자리 차지해 보겠다는 인간적인 욕망은 한국교회 연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결과는 연합이 아닌 또 다른 분열을 조장하는 시작일 뿐이다. 십자가만이 자랑이 되는 한국교회를 기대해 본다.

박만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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