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레시아, 예배를 위한 성도들의 정기적인 가시적 모임

[ 알기쉽게풀어쓴교리 ] 7.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교회론

김도훈 교수
2022년 04월 20일(수) 14:34
오늘 우리의 교회에 대한 도전은 무엇일까? 시급한 문제는 "코로나 이후의 교회와 예배"의 회복에 관한 고민일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는 교회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성만찬 형식이 바뀌고, 심방과 교제가 축소되고, 설교 매체가 변했다. 아울러 예배의 형식과 참여수단이 달라졌다. 그로 인해 예배에 대한 의식이 달라지고, 예배 모임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계획과 프로그램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본질로, 다시 기본으로,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고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신학적 대안으로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론의 강조다.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설교하고 실천해보자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에클레시아)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단순 명료한 교리적 정의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모임이라는 교회의 정의 자체가 아니다. "모여야 교회가 된다"는 생각과 실천이다. 모임이라고 정의했으면 모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다. 에클레시아가 등장하는 성경의 몇 구절들을 인용해보려 한다.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살후 2:14),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 (갈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1:2), "아시아의 교회들"(고전 16:19), "마게도냐 교회들"(고후 8:1), "유대에 있는 교회들"(갈 1:22),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 (몬 1:2),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계 1:4), 예루살렘(행 5:11, 8:1, 3, 11:22, 12:1, 14:27 등)과 안디옥의 교회(행 11: 26, 13:1, 15:3, 41) 등.

이 구절들을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바울은 어떤 의미로 교회(에클레시아)를 사용했을까. 왜 바울은 교회 앞에 항상 지역 명칭을 부여하고 있을까? 위 본문들을 보면 바울은 실존하고 현존하는 가시적 지역교회를 교회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바울에 의하면 교회는 보이지 않는 저 너머 어느 곳에 있는 모임이 아니라, 마게도냐에, 고린도에,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 안에, 아킵보의 집 안에 있는 모임이었다. 추상적인 모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이고 지역에 현존하는 모임이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오늘날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나의 신앙의 뿌리가 되는 실재 지역교회가 교회임을 의미한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날 매우 중요하다. 내가 지금 모이고 있는 교회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추가할 것은 교회는 실질적이고 정기적인 모임이라는 점이다. 바울은 교회를 "백성들의 실질적인 모임 혹은 정규적으로 구성된 집회로 모이는 그룹"(P. O'Brien)으로 보았다. 저명 신학자 던(J. Dunn)은 바울의 교회를 이렇게 해석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로서 함께 모여서 교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바울에게 신자들은 고립된 개개인들로서는 하나님의 교회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어느 구체적인 장소에 정기적이고 구체적으로 모인다고 교회가 되는가? 바울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모임을 염두에 두었다. 던의 해석을 보자. "신자들이 예배를 위하여 서로를 붙들어 주기 위하여 함께 모일 때에야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의 회중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독일의 성서학자 롤로프(J. Roloff)도 "개개인들이 교회로서 모일 때마다 그것이 교회"라고 정의하면서 예배를 위한 모임이 교회임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는 바울의 에클레시아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하였다. "예배를 위한 모임은 교회의 삶의 중심이자 기준이다. 여기에서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교회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난다."

아무리 인터넷 연결망이 발전하고, 코로나로 인해 예배 드리는 현실이 어려워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정적이어야 한다. 거듭말하지만 교회의 기본적인 의미는 예배를 위한 성도들의 정기적인 모임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위한 모임을 폐기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교회됨은 우선 예배 모임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예배의 부흥이 있기를 소망한다.

김도훈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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