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로서 공감하기

[ 인문학산책 ] 54

임채광 교수
2022년 04월 19일(화) 09:57
호주와 홍콩에서 성장해 영국에서 활동중인 크로즈나릭(Roman Krznaric)은 세계 최초로 세계 각지를 돌며 공감박물관(Empathy Museum)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
최근 2030남성 세대를 둘러싼 각종 논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특히 선거철을 맞아 그들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정치세력과 기성세대 또는 여성운동가들 사이에 이견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에 주목할만한 점은 4050으로 불리는 기성세대와 2030세대 남성간의 충돌이다. 실제로 대선 출구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2030남성과 4050기성세대의 지배적 정치성향이 달리 나타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물론 젊은 여성세대가 기성세대와 동일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기성세대와 젊은 남성들과의 견해 차이가 더 도드라지게 나타났는데, 이 중에도 남녀 평등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컸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남녀 불평등의 전통적인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고, 장차 성숙된 평등사회에 도달하는데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왜 젊은 남성들이 양성평등 이슈에 대해 이토록 강력하게 반발하는지, 심지어 여성가족부의 해체까지 요구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기성세대의 지배적 시각이다.

2030남성들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정작 아동 청소년기 기간 및 학창시절에 여성에 대한 그 어떠한 차별적 이익을 취한 경험이 없고 그런 의도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학생 또는 사회 초년병들에게 현실은 일종의 역차별로 다가온다. 물론 여가부 폐지 그 자체로서 그들의 신상에 우호적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제도적으로 어떠한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일종의 상징적 성격을 갖는다.

극심한 이견이나 갈등이 발생하는 사회적 공간이나 집단들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한 현상들이 수반된다. 우선 동일한 문제를 서로 다른 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여성의 지위향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양쪽 모두 동의하지만 체감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특히 2030남성들의 경우 취업뿐만 아니라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병역의무가 있음에 그들의 심리적 다급함은 이들을 더욱 옥죄어오는 이유가 된다.

동일한 사태에 대해 서로 다른 정보와 수단으로 접근하는 경우에도 갈등이 증폭된다. 여성들은 물론이지만 권위주의적 사회 속 남녀 차별사회의 현상을 지켜보며 생활했던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아도 남성 청년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반대편에선 오히려 한국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이 군입대와 같은 제도적 불리함 외에도 결혼할 때 주어지는 재정적 부담과 사회적 책무를 떠안아야 하는 고충이 있다고 항변한다.

다름이 때로는 생산적인 내일을 위한 밑거름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갈등과 투쟁관계가 형성될 때 사회적 통합을 해친다. 특히 첨예한 갈등이 전개되는 각 주체들은 각기 다른 의도와 목표를 설정해 놓고 쟁투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방향과 목표를 달리하다 보니 당장 현안을 보는 관점의 간극이 넓어질 수 밖에 없다. 갈등의 봉합과 화해를 위해서라도 속히 2030남성과 기성세대간의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철학은 본래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 유효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자임해 왔다. 갈등을 부추기는 극단주의나 회의론을 극복하는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을지라도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에겐 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호주 출신의 영국의 사상가 크로즈나릭(Roman Krznaric)은 '공감하는 능력'에서 인간을 본래적으로 공감하는 능력을 보유한 채 태어나는 존재, 즉 '호모 엠파티쿠스'라고 규정한다. 인간의 본성을 살리는 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비책이다.

공감은 또한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현안에 대한 접근방식에 첫 단추가 공감 의지로부터 시작된다. 크로즈나릭에 의하면 공감능력이 뛰어난 이들은 여섯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①공감회로를 작동시켜 정신적 프레임을 전환한다. ②타자의 개성과 인간성 등에 주목하며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③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험에 과감히 뛰어든다. ④낯선 대상과의 대화 기법을 연마한다. ⑤예술, 문화, 영화, SNS등 타자의 마음속으로 다가가 역지사지해 본다. ⑥주변을 포용하며 점차 변화시킨다.

오해의 골이 깊을수록 일거에 해소되긴 쉽지 않다. 그렇지만 구성원들의 관심과 해소 의지는 중요하다. 특히 리더는 갈등과 분쟁 해결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2030남성세대 또는 여성계 및 기성 세대간의 갈등은 단지 '다름'에서 표출된 현상을 넘어 사회-문화적 사건이자 정치적 과제이다.

사실 공감 의지를 갖고 바라볼 때 젊은 남성과 기성세대는 닮은 부분이 많다. 그 중에 가장 도드라진 점은 '낀 세대'라는 점이다. 4050세대는 부모님을 모시고 공경하도록 배우고 실행한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적은 수의 자식을 두었기에 본인이 한 대로 동일한 대접을 받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2030남성세대의 경우는 양성평등 문제에 한하여 '낀 세대'이다. 청년으로 성장해 오면서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온 이들에게 남성우월주의는 교과서에서나 본 개념이었다. 그러나 책임 의무는 그들을 제외시키지 않는다. 억울한 지점이다. 관심과 공감 그리고 사랑이 서로 필요해 보인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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