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님이 여기 안오셨다면…"

[ 땅끝편지 ] 인도네시아 김동찬 선교사 <2> ‘은혜교회’ 개척 이야기

김동찬 목사
2022년 04월 19일(화) 08:01
은혜교회 교인들 성경공부.
해변에서 거행된 은혜교회 회심자 세례식.
선교관으로 사용하던 아파트 4층에서 영어 팝송을 가르쳐주려고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를 돌며 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외딴 섬에서 이주한 중국계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팝송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초등학생이 하나, 둘 왔다. 한번 온 아이들이 친구를 데리고 와서 아이들이 늘었는데 이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십분 이상 집중하지 못했다. 큰 소리 치며 중국말로 욕하고 싸웠다. 아이들 속에 있는 분노와 상처, 깨진 정서가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을 보면 잠시도 내버려 두지 못했다. 남자 아이들이 찬 공에 형광등이 깨지고 창문 유리가 박살이 났다.

아이들에게 팝송을 가르치다가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린다고 했을 때 남자아이 둘이 왔다. 한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 교회 옆집에 사는 아이로 아이들에게 '왕따' 당하는 아이였고, 다른 한 아이는 유급이 되어 초등학교 2학년을 세 번째 다니는 아이였다.

오는 아이들에게 기타와 키보드를 가르쳤다. 부끄러워 문밖에서 몸을 기울이면서 안을 들여다보던 아이들도 드럼과 태권도, 컴퓨터를 배웠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져보는 악기들이었다.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의 집을 심방 하면서 그들이 사는 모습에 놀랐다. 편모와 사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바탐이 개발되면서 무작정 다른 섬에서 가진 것 없이 온 사람들이었다. 네댓 평 정도의 방 하나를 월세로 얻어 네댓 명 가족이 잠만 자는 곳이 집이었다. 방에는 다른 물건은 없고 매트리스가 깔려 있어서 앉을 공간이 없었다. 엄마는 온종일 장사하느라 집은 비어있고 학교에 가면 인도네시아어가 낯선 아이들이 공부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중국계 아이들은 집에서 중국말만 쓰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어가 서툴렀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열등생이고 동네에서는 문제아로 찍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몰려다니면서 사고를 쳤다.

공휴일과 일요일 오후에는 아이들을 차에 태워 빈터로 갔다. 자동차 정원이 여덟 명인데 오는 아이들을 모두 실으면 열댓 명이 넘어 포개 앉았다. 축구 할 수 있는 빈 땅을 찾아 놀다 축구가 끝나면 시원한 냉음료를 사서 나누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밥을 같이 먹었다.

'왕따'를 당했던 수나르디는 기타와 키보드를 배워도 가장 늦게 이해해 놀림을 당했는데, 아이가 매일 교회로 와서 키보드를 연습하면서 악보 없이도 어떤 노래든지 듣기만 하면 다 치는 교회 반주자가 되었다.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으로 인해 어두웠던 아이가 키보드를 배우면서 회복되었다.

알롱이라는 아이는 친구가 고등학생이 되어도 초등학교에 다녔다. 처음 만나 이 친구에게 나이를 물어봤더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드럼을 배워보라고 했을 때 도망 다니던 아이가 드럼을 치면서 자신감을 얻고 다른 악기도 연주하게 되었는데 드럼을 칠 때 리듬감이나 손목의 놀림이 유연해서 드럼 소리가 달랐다. 이 아이가 이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공부를 못하면 열등생으로 생각하지만, 그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가 있고 그것을 발견하고 펼치면 학교 공부도 잘 따라갔다.

공부가 싫고 미래에 대해 꿈을 꿀 수 없던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견습 선교사와 방학 때마다 단기 선교로 오는 한국 청년들이 전해주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들을 모델 삼아 꿈을 꾸면서 변했다. 교회에 오는 말썽꾸러기인 아이들에게 한 말이 있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창문을 깰 때도, 형광등이 깨질 때도, 잘못하고 실수할 때도 아이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날마다 부어주고 잘하는 것에는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다. 아이들을 기다려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중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을 기숙사 학교로 보내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이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 라서 내 자식처럼 여겼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일을 해도 괜찮았다.

이제 교회를 개척한 지 이십 년이 지났다. 말썽만 피우는 아이들, 환영받은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교회 오면 환대를 받으며 변해갔다. 교회에 왔던 아이들이 모두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아이들은 괜찮은 아이로 자랐다.

옆집에 살던 수나르디가 교회가 생기고 10년이 되는 날 이렇게 간증했다. "선교사님이 여기 오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없습니다"



김동찬 목사 / 총회 파송 인도네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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