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잃은 것과 얻은 것

[ 시인의눈으로세상보기 ]

이재훈 시인
2022년 04월 13일(수) 10:00
봄학기 개강이 되었고 2년 만에 대면강의를 했다. 뭉클했다. 학생들의 얼굴과 눈동자를 보면서 수업하는 평범한 일이 감동으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코로나를 겪은 시간들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비대면강의가 보편화되면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 쉽지 않았다. 사이버공간 속의 선생과 학생들은 약간의 무심함이 서로를 위한 배려가 되었다. 학생의 얼굴을 아는 것보다 온라인의 접속 기록을 중요시했고,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아 학점을 이루어나가면 되었다. 그런 일은 금세 적응되었고 어떤 측면에서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었다. 하지만 대면강의를 시작하고 보니 교육의 중요한 어떤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이해하며 공감하는 강의실이 가장 필요한 것은 아닐까. 지식의 전달보다 공감과 격려와 연대와 소통이 더욱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코로나로 많은 것들을 잃었다. 생활이 어려워졌고 경제가 가라않았다. 직장은 위기였고 가정은 싸움이 잦았다. 슬라보예 지젝은 서로 만지지 못하고 접촉을 금하는 것이 팬데믹 시대 사랑의 기준이 되었다고 했다.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지적하는 법만 늘었다. 또한 우리는 얼굴을 잃어 버렸다. 얼굴 없는 인간이 되었다. 조르조 아감벤은 유일하게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얼굴을 가리는 시대라고 했다. 마스크를 통해 말을 하며 얼굴 드러내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했다. 사회적 시스템은 규제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지젝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바이러스라는 자연적 우발적 존재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바이러스의 창궐과 확산을 악화시키는 우리의 사회적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상실을 통해 중요한 가치를 깨닫곤 한다. 사람들끼리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 시간들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 온라인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보며 갖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도 알았다.

반면 코로나로 얻은 것들도 있다. 우리 공동체는 방역에 대한 경험과 태도를 통해 배려와 극복의 가치를 온몸으로 얻었다. 정부의 지침과 통제는 불편하고 짜증날만한 일인데도 모두 나의 일처럼 따르고 응원했다.

코로나로 가장 많이 변화된 것은 온라인 시스템의 대중화이다. 이제는 초중고와 대학생 모두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강의를 하는 선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또한 온라인 수업을 위해 강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업로드하는 일들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줌(zoom)이나 팀즈(Microsoft Teams) 등을 이용한 실시간 강의도 이제는 익숙한 일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노트북이나 패드를 들고 강의에 들어와 수업을 듣는다. 교재 학습도 필기도 모두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다. 온라인에서는 무료 동영상 강의나 시민학습 혹은 온라인 공연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는 많은 강의들이 온오프라인 모두 활용될 수 있게 제작하고 있다. 국민의 대부분을 얼리어답터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졌고 많은 것들이 변화되었다. 나희덕 시인은 "오히려 세상은 불가능들로 넘쳐나지요/오죽하면 제가 가능주의자라는 말을 만들어냈겠습니까/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듯한 이 시대에 말입니다"('가능주의자')라고 말했다. 가능주의자는 믿음주의자이다. 불가능한 일들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믿음의 힘이다.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저는 가능주의자가 되려 합니다/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어보려" 한다고 힘주어 노래한다. 이제는 회복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비대면으로 인해 멀어져간 사람들과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치고 상처받은 나 자신과의 회복이 가장 먼저이다. 회복도 감동적으로 이루어낼 것이라고, 가능할 것이라고 가능주의자가 되어 보기로 한다. 코로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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