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인문학산책 ] 53

임채광 교수
2022년 04월 13일(수) 07:57
생각하는 것은 인간 고유의 능력일까? 인간 외의 다른 개체가 인간과 유사한 정신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최초로 제시했던 이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제2차 세계대전 적국이었던 독일의 전자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였던 튜링이었다. 그는 1950년 Mind라는 학술지에 '계산기계와 지성'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컴퓨터가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튜링은 논문에서 컴퓨터와 대화를 나눌 때 컴퓨터의 반응을 30% 이상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해당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한다고 간주한다.

"튜링 테스트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5분간 조사자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조사자의 할 일은 대화 상대가 프로그램인지 사람인지 추측해 내는 것이다. 사람이라고 공인한 경우가 30%를 넘을 때 프로그램은 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Russell & Norvig, 2010) 2014년 영국의 레딩대학교 연구팀은 우크라이나 13세의 소년을 전제로 만든 프로그램 '유진 구스트만'으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첫 사례를 남겼다.

이 사례는 여러 가지 반론을 낳기도 했다. 우선 프로그램에 설정된 '우크라이나의 13세 소년'이 매우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그 하나이다. 만약 65세의 뉴욕커라는 설정이 13세의 우크라이나 소년보다 대화 내용을 설정할 때 경우의 수가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비판은 미국의 언어학자였던 서얼의 화용론적 의미론의 시각이었다. 그는 언어적 기호의 전달체계를 통해 유사한 반응을 도출해 냈다고 하여도 언어의 상징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장차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정보와 판단력, 심지어 감성적 부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이성과 대부분의 정신 활동 능력을 따라잡거나 능가하리라 예상되고 있다. 동시에 이를 산업적 영역에 접목시키는 시도가 다양한 영역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아마존 그룹이 매장과 공장을 연결하는 스마트 시스템을 가동하였고, 경제 산업 영역이나 교육용 인공지능의 개발, 가전용품, 의료영역까지 알고리즘이 접목된 서비스 산업의 기민한 움직임도 목격된다. 인공지능의 통제 아래 작동하는 택시나, 택배 기사, 홈케어 로봇은 이미 출시가 임박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최신 기술정보가 접목된 융복합 사회를 '제4차 산업혁명기'라고 부른다. 그는 19C 철도 건설과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적 생산체계 시기를 제1차 산업혁명, 20C 전후 전기와 생산 조립라인 기반의 대량 생산 체계를 제2차 산업혁명 시기로 분류하였다. 아울러 제3차 산업혁명 시기는 1960과 1990년 사이의 메인 프레임 컴퓨팅 기반 디지털 혁명기를, 제4차 혁명기는 21세기인 현재를 지칭한다. 이 시대는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중시된다.

인류는 우리가 보유한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 욕망과 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 왔다. 인간의 강점은 다채로운 정신 활동에 있다. 다만 인공지능을 계기로 정신활동이 인간의 고유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정신활동의 결과라고 추정할 만한 현상들이 증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인간의 정신활동을 대체할 만한 개체는 적어도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다. 침팬지와 같은 고등동물이 군집생활 또는 생명체 보존 욕구와 같은 정신 활동과 유사한 흔적을 보여주었으나 그 정교함과 수준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인공지능의 패턴은 이들보다 훨씬 인간의 행동방식에 접근해 있거나 부분적으로 추월하고 있다.

생각하는 능력은 정신적 활동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유일한 기능은 아니다. 예를 들면 느끼고 체험하는 기능은 정신 활동의 기초가 된다. 공감 능력이나 심미적 감각에 특히 중요하다. 칸트는 지적 사유능력을 관장하는 오성의 기능은 인식활동의 가능 조건인 '시간'과 '공간'의 영역 안에서 감관의 작동에 의해 취합된 정보가 12개의 오성 범주를 경유하여 지적 판단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관의 기능에 의해 취합된 정보를 토대로 오성이 작동할 수 있다. 즉 육체성이 배제된 엄격한 오성작용이나 지적활동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영적 활동 역시 인공지능이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임에 틀림없다. 서얼의 주장과 같이 인간의 사유 패턴과 유사한 반응을 한다고 그것이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부족하다. 초월적 가치나 영적 요소들에 반응하는 것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니체가 인간을 '아직 고정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동물'이라 불렀듯이, 인간은 어떠한 한 두 가지 기능과 관점으로 섣불리 예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사유능력이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할지라도 드러나지 않으며 기능하는 수백, 수천, 아니 수만 가지의 기능들이 인간의 몸에 숨겨져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역할과 위치의 존재 이유는 설계자이신 하나님 외엔 알 도리가 없다. 인간의 몸, 존중하고 존귀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이다.

임채광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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