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봄

[ 목양칼럼 ]

최상민 목사
2022년 04월 06일(수) 08:13
앞마당에 매화꽃, 살구꽃이 피었다. 바로 아래 따스한 양지에는 목련꽃이 피고 건너편 산기슭에는 산수유꽃이 피었다. 날마다 집으로 오가는 길가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피었고 교회 오가는 양쪽 길에는 벚꽃이 만개하였다. 앞산과 뒷산에는 진달래꽃이 푸른 숲 사이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우리가 사는 남녘 주변에서 보게 되는 아름다운 봄꽃들이다. 이런 꽃나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추운 겨울을 밖에서 보내고 봄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봄에도 종류가 있다. 첫째, 시간의 봄이 있다. 시간의 봄이란 달력에서 말하는 봄을 말한다. 달력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석 달을 한 계절로 나눈다. 이미 3월을 지나 4월이 되었지만 이런 봄에도 눈이 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하순경 어느 집사님께서 길 위에 눈이 쌓인 겨울 풍경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내주셨다. 시간은 봄인데 풍경은 겨울이었다. 이처럼 겨울같은 봄도 있다.

둘째는, 자연의 봄이 있다. 언젠가 읍내에서 우리교회로 오는 길가 벚나무 가지 여기 저기에 꽃이 조금 피어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때는 11월 가을이었다. 꽃을 바라보면 봄인데 때는 가을이었다. 실제 풍경이 계절과 상관없이 봄을 보여줄 때도 있다.

셋째, 인생의 봄이 있다. 흔히 인생을 춘하추동 계절에 비유하기도 한다. 봄이 유아기라면 여름은 청년기이고, 가을이 장년기라면 겨울은 노년기로 볼 수 있다. 이는 신체적 변화에 따른 인생의 주기를 가리킨다. 그러나 아무리 신체적으로 사람이 장년인 가을, 노년인 겨울의 시기에 도달하였어도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는 청년처럼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가 나이를 물으면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적은 나이로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학문적으로는 주관적 나이라고 한다.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의 봄을 살아야 한다.

넷째, 교회의 봄이 있다. 필자는 교회의 겨울을 경험한 적이 있다. 교회가 겨울이 되면 모두가 힘들다. 바깥 자연의 겨울이 추워서도 아니고 거센 눈보라가 날려서도 아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교회를 겨울로 만들 수도 있고 봄으로 만들 수도 있다. 교회는 항상 봄이 되어야 한다.

필자의 교회로 보자면 이젠 시간의 겨울도 지나고 계절의 겨울도 지나고 봄이 왔다. 아직 성숙한 봄은 오지 않았지만 교회는 봄 속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봄기운이 우리를 품어주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봄으로 품어주셨다. 기도하면서 교회의 봄을 기다려 주신 교우들에게 감사드린다. 교회의 봄을 만들어주기 위하여 전국 여러 지역에서 오셔서 군불을 지펴 추운 겨울을 함께 견뎌주시고 힘이 되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지금도 교회의 겨울을 생각하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도종환 씨의 '다시 오는 봄'이란 시가 있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 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 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널리 알려진 고대 유대경전 주석서 미드라쉬의 '다윗 왕의 반지' 중에 나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이 어느 때 보다 공감이 되고 큰 위로가 된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이 계절에 아직도 교회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교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한국 교회에 봄의 향기가 가득히 채워지길 기도한다. 주님의 웃음소리, 성도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교회의 봄을 소망한다.



최상민 목사 / 영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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