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았던 여성의 개종 결정…'자유와 해방의 종교'

[ 선교여성과 교회 ]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전도부인 完

김은정 박사
2022년 04월 06일(수) 16:47
지난 3월 8일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선교여성의 날 예배에서 기도하는 여전도회원들. / 한국기독공보 DB
개종이 개인의 의지에서 출발하지만 주변의 사회적 정황이 때로 개종을 방해하기도 하고 촉진하기도 했다. 여성의 결정은 가족 전체 삶의 방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남편들은 새로운 종교로 개종하는 아내들을 박해했다. 선교사들은 남편의 박해를 여성 개종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기도 했지만 조상숭배를 금하는 가르침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개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조상숭배는 한 가문의 안위와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종교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제사와 풍수, 조혼 등이 모두 조상숭배의 심리와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위패를 없애는 일은, 한국인의 믿음에 따르면, 영혼이 쉴 곳을 잃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포기하는 것이 조상의 위패였다. 그래서인지 예수의 "내가 먼저 가서 너희 처소를 예비하리라"는 약속은 한국인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한편, 언더우드 부인은 "대체로 여성들은 언제나 낡은 습관과 편견을 포기하는 데 가장 느리고 최후까지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하나의 실례로 소래의 김 부인은 자녀들이 모두 개종했는데도 끝까지 전통을 지키는 마지막 수호자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들 김필순이 모든 제구를 소각해버리자 기독교 안에서 가문을 지킬 생각으로 돌아섰고, 산기도와 골방기도, 금식기도 등 적극적인 기도 생활로 집안 안팎의 위기를 극복했다. 그가 가문 밖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시간을 들여 복음전도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소래를 다녀간 선교사들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소래를 오가는 길은 험난했는데 한 번도 여행을 해보지 못한 김 부인은 제중원에서 일하는 아들을 보러 서울에 다니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뱃멀미를 심하게 하면서 선교사들이 소래를 방문하기 위해 감수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사경회는 신앙의 "참 재미(Cham chaemi)"를 극대화하는 기회로 여성들은 집을 떠나 여행하고 다른 지역의 기독교 여성들을 만나서 그동안 고립감을 해소하고 비일상적인 경험을 했다. 천국을 기독교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한국 여성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기독교인의 책임에 대해서 차차 인식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전도부인은 자신이 전도한 환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심한 박해를 받아 좌절해서 어서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 때마다 전도부인은 "이제 당신은 특권도 있지만 책임도 갖고 있잖아요"라고 말문을 열어 예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가족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인내심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여성들은 기독교 가정을 꾸려나갈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선교사들로부터 새로운 가정 경영의 방법을 배우고 지적인 능력과 사회성을 길러나갔다.

# 맺음말

19세기 말 20세기 초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는 유교적 신분 사회와 전통 종교가 여성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보여 주었다. 이 때문에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에는 자유와 억압 두 가지 상반된 기제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여성들은 '자유와 해방의 종교'라고 인식했다.

전통적 삶의 방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기독교를 더욱 쉽게 받아들였다. 지식 추구를 격려받지 못했으나 지적인 능력과 호기심을 가진 여성들, 삼종지도의 삶에 만족할 수 없는 여성들, 자녀를 잃은 허무를 극복하려는 여성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선의를 가진 여성들이 바로 가장 적극적인 전도부인이 되었다.

서울에서 초기의 선구적인 여성들이 전도부인으로 자원해서 활동하는 동안 평안과 황해 지역에서는 전도부인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과정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평양여성경학교로 대표되는 전도부인 양성기관이었다. 여기서 길러진 지도자들은 북쪽 지방에서'권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이들이 무급, 유급 전도부인으로 여전도회를 이끌었다.

전도부인의 신앙은 천국을 기독교의 중심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고, 복음서의 종말론에 기초해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데까지 의식의 발전이 있었다. 기독교는 문명전환기의 불안한 시대에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여성들은 기독교를 이용해서 삶의 의미를 재구성했다.

김은정 박사 / 연세대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