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우(蕩牛)

[ 목양칼럼 ]

서규석 목사
2022년 03월 23일(수) 08:38
시무 장로님 중에 한우 축산업을 하는 K장로님이 계신다. 필자는 몇 해 전, 봄볕 따스하게 내리비쳐오는 주일 아침을 잊을 수가 없다.

장로님은 성격이 온화하시고 참 말이 없으신 분이다. 교회의 큰일에서부터 작은 부분까지 그분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손재주가 남다르게 뛰어나 무엇이든지 그 장로님 손만 닿기만 하면 거의 해결이 된다. 아내는 그 장로님을 '맥가이버 장로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요즘같이 따뜻한 어느 봄날 주일 아침이었다.

장로님께서 평소에는 주일에 교회를 일찍 오시는데 그날은 유독 예배시간 5분 전에 헐레벌떡 뛰어 오셨다. 장로님에게 물었다. "장로님, 웬일이십니까? 왜 이렇게 급하게 오시는지요?" "아 글쎄, 목사님, 우리 소막에 얼마 전 송아지가 태어났는데 이 놈이 갑자기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 집나간 송아지를 아침부터 정신 없이 찾아 다니느라 온 들녘을 다 헤매고 다니다가 송아지는 찾지도 못하고 이제 오는 겁니다." 들어보니 황당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애지중지 얻은 귀한 송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갔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젖 먹는 어린 송아지가 어미 곁을 떠나 생사조차 알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그리고 그 놈은 어디에서 어떤 꼴로 방황하고 있을까? 행여 지나가는 차에 치여 죽지나 않았을까?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하니 아찔했다.

"일단 장로님, 시간이 다 되었으니 예배부터 드립시다" 마음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려고 하니 그때부터 집 나간 송아지가 아른 거리기 시작했다.

찬송을 불러도 송아지, 기도를 해도 송아지, 설교를 해도 송아지, 아… 집나간 송아지 때문에 집중이 안되는 것이다. 그래도 예배는 신령한 마음으로 드려야 하니 그 녀석은 주님께 맡기고 힘을 내어 찬송하고 기도하며 뜨겁게 말씀 전하고 간신히 예배를 마쳤다. 예배를 마친 후 장로님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소가 있는 막사로 달려가는데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참 송아지가 귀하긴 귀한가 보다.

잠시 후 장로님에게 전화가 왔다. "목사님! 송아지 찾았어요. 아 그 놈이 스스로 집을 찾아 되돌아 와서 어미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데요." 필자는 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칠 뻔 했다.

집을 나간 자식이 언제나 돌아오려나 먼 발치에서 사슴 목으로 온종일 기다리는 아버지는 지친 기색이 없다. 하늘 아버지 또한 죄인 하나 돌아오는 그 길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흐트러짐 없이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가야 할 길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요, 가야 할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우리가 아닌가?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지금 화사한 봄꽃들의 거룩한 개화(開花)에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서규석 목사 / 부안 동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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