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여성경학교와 전도부인 신마리아

[ 선교여성과 교회 ]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전도부인 ⑤

김은정 박사
2022년 03월 17일(목) 09:52
지난 8일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선교여성의 날 예배에서 기도하는 여전도회원. / 한국기독공보 DB
서울에서 활동한 초기 전도부인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부인들로 내외법의 제한을 받지 않고 외출할 수 있는 여성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신마리아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10대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관직 진출이 좌절되고 노동을 하지 않는 양반인 남편을 대신해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전도부인이 되었다.

일가친척과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전도하고, 여선교사와 동행해서 심방을 다니거나 여러 형태의 성경반-여학교의 성경시간, 매주 정기적으로 열리는 주중 성경반, 주일 오후 새신자반-에서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했다.

신마리아는 선교사의 하녀, 전도부인, 여학교의 보모, 사감, 성경교사, 교감, 연동교회의 집사, 부인회의 회장 등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했다. 그가 성경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을 마무리한 곳은 평양여성경학교였다.

서울에 있는 여성경학교에서 공부하지 않고 평양을 찾아가서 공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신마리아는 연동여학교에서 오전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오후는 상급반 학생과 공부하거나 전도활동을 했다. 여학교에서 성경과 기타 교양 과목을 여선교사들에게서 개별 지도를 받기도 했고, 새로운 번역서를 바로 받아서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으며, 각종 사경회에서 국내외 유수한 강사들의 연설을 듣고 배우는 기회가 많았다.

이런 모든 훈련과 교육의 기회들 때문에 신마리아는 성경교사로 일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왜 굳이 서울이 아닌 평양여성경학교 과정을 이수했을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1914년 이전 서울에는 북장로회선교회가 운영하는 여성경학교 과정이 없어서 여선교사들은 지도자급 여성들을 평양여성경학교로 보냈다. 평양은 1900년대부터 장로회 선교사업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었다.

특히 신마리아가 관심을 가진 사경회는 평안과 황해 지역에서 가장 왕성하게 발전했다. 처음에는 평양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나중에는 평양여성경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1914년 졸업하고 돌아와서 1916년 연동교회 안에 여전도회 격인 부인흥신회를 조직했고, 사경회 강사로도 활동했다.

그렇다면 평양여성경학교는 어떻게 장로교회 여성사업의 중심지가 되었는가? 1910년 10월 평양여성경학교 2층짜리 교사(校舍)에는 장로교 전도부인 80명이 모였다. 이들은 해마다 농한기가 되면 평양에 모여 같은 성경 본문과 주제를 가지고 강의안을 만들어 2주간 공부하고, 시골에 가서 사경회를 2~3개 이상 열겠다는 약속을 하면 수강료를 면제받았다.

이런 2주간의 사경회를 사역자 사경회(Workers' Class)라고 불렀는데 정초(도시부인 대상)와 봄(시골부인 대상)에 크게 열리는 부인대사경회를 오랫동안 참석한 여성 지도자들을 다시 모아서 훈련하는 성격의 사경회였다.

마거릿 베스트는 1903년에 교장으로 담당하던 숭의여학교를 후임에게 넘기고 평양 부인사경회를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8년 사경회가 평양대부흥 이후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미국 여선교회에서 보내온 모금액으로 여성경학교 건물을 마련했다.

1910년에는 교사진과 교육과정을 제출해서 선교회에서 정식으로 평양여성경학교를 인정받았다. 1년에 10주 과정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5년 만에 마치는 정규과정이 최상위반이었고, 이전에 계속해온 주일학교 교사사경회, 시골부인대사경회, 도시부인대사경회, 사역자 사경회 등을 특별과정으로 편성해서 도시에서 열리는 사경회와 농촌사경회를 연결하는 본부로 삼았다.

평양여성경학교 정규과정의 첫 졸업생은 1912년에 배출되었고, 그 중 박도신과 석유실 두 사람은 교사로 바로 임명되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선교사의 전도부인이자 유능한 사경회 강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김은정 박사 /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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